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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땅콩 Nov 25. 2024

하    늘 1

야뇨증




어른들은 그래, 무엇이 들었냐고 엇을 하느냐고 묻지 않았는데 자기 식으로 말하면서 우기곤 하는 거지

여태껏 그렇지 않은 어른들을 보지 못했어

그래서 그런지 나는 색다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내가 궁금해질 때마다 습관적으로 되돌아봐 진부 한 건 아닐지 흉내 내는 건 아닌지

거짓말과 회피를 일삼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을 해 내가 내 눈치를 보는 거야 제대로 된 말의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는 거지 그런데 이상도 하지 그럴수록 말들이 자꾸만 사라져, 도둑맞는 것처럼...


여덟 마리의 말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신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부터 하루를 달린다고 했다

불타는 갈기를 가진 말들의 발굽 소리가 천둥 같다고 했어 신의 손에 쥐인 채찍에는 비명을 내는 혀가 있다고, 이빨을 드러내고 신이 웃으면 번갯불이

천벌을 내린다고도 했다 움츠러드는 귓속말로 살금살금 다가와 어른들이 한 말이야 언제나 그들의 언어는 음습하고 축축했다


몸통 안에 소금이 달궈지기 전에 사내들은 들로 나가 흙 위에 소금땀을 흘리고 여자들은 도마옆에 놓인 소금을 음식에 던져 넣었다

숨구멍으로 하얗게 소금이 넘쳐 나오면 동네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조용하라며 등불을 내걸었어 귀신의 시간이라더군

통곡은 이른 아침에 끝이 났다 사람들은 겹겹이 싸멘 소금의 주인을 들고 산으로 들어어 그리고 밤이 되기 전에 흙이 묻은 신발을 끌고 돌아왔다

그런 밤에는 여우가 토해내는 깊은 어둠이 마을을 감쌌어 안개로 가득해져서 숨이 찰 지경이었지 죽은 소금이 지하의 강물로 녹아든다고 했다


또 그런 밤에는 야경꾼의 호루라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검은 소가죽을 뒤집어쓰고 뿔이 돋아있는 가면을 쓴 여럿이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댔어  쓰레기통을 뒤지는 쥐들과 얼굴이 하얀 여자를 골라  목덜미를 물어뜯는 짐승들이 산에서 내려온다며 이불을 덮어주었지

아침이슬이 내릴 때까지 야경꾼들은 채찍을 휘두를 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잠든 아이의 방문을 나왔다


어른들은 말해주었어 대낮의 시간에는 해를 보면 안 된다고 했다 노을이 질 때까지 기다려서 붉어진 해에게 경배하라고 했지 이 세계를 살리기 위한 공로허리 숙여 감사하라는 거였어

나는 어른들 몰래 눈을 깜빡거리면서 해를 보려 했다 햇빛을 쏟아내고 있는 신의 중심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거야 보는 순간 이내 눈이 아팠다 실눈을 뜨고 보려 했지 쏟아져 들어오는 햇 속에 머릿속이 하얘졌어 나는 색깔이 들어 있는 비닐을 주웠어 그리고 내방창문 아래 숨어 눈을 가리고 해를 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둥근 모양의 쟁반하나가 걸려 있어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던 거야


혼자 남은 시간에, 나는 깨진 거울조각을 들고 나뭇가지 사이를 비추거나 담벼락 아래 이끼들과 벌레에게 빛을 나누어주며 놀았다 처마밑에 석가래와 제비둥지 비추기도 했었지 깃털을 찾고 었던 거였어


그러던 어느 날엔가 커다란 아우성이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

가슴에 치렁치렁 쇠붙이를 매단 사람들이 내 몸을 덮쳤던 거야 헝겊으로 눈을 가렸어 손을 묶고 커다란 항아리 속에 나를 가뒀다 

비린내가 났어 코피가 날 때 콧구멍을 틀어막던 휴지에서 났던, 오래된 먼지들의 건조한 냄새도 가득한 어둠 윙윙대는 바퀴를 단 고요, 나는 시간이 사라진 그 속에서 혼자인 것이 두려워져서 소리 내어 울었어 아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나를 꺼내달라는 기도를 했지 배가 고파졌어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

얼마가 지났는모르겠어 수면의 벽을 부수고 어른들이 흔들어 깨웠던 거 같아

나를 부르며 흐느끼는 엄마의 우는 소리가 가까이로 다가왔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했어 두 눈이 새카맣게 파인 눈먼 사람이 된다고 그랬지 

밤마다 마을과 숲의 언저리를 돌아야 하는 야경꾼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어 눈물이 말을 하는 것처럼 주르르 흘러내렸어

나는 그때 엄마의 두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렁그렁한 눈물... 나는 내게 맹세를 했어 다시는 엄마를 울리지 않겠다고, 해를 보려 하지 않겠다는...


그날 저녁, 잠들기 전에 나는 들었어

죄지은 영혼들이 울부짖는 소리였어 바람결에 섞인 죽음의 노래였어 나무들이 삭정이를 부러뜨리며 내는 신음 같았어


나는 꿈을 꾸었다 가장 높은 가지 위에서  수리부엉이는 어린 자식의 간을 파먹고 있었어 속에 구멍이 뚫린 아이는 무수한 나무를 거느린 영혼 같았어 죄지은 어른들이기도 했지 말을 잃어버린 헐벗은 피난민 같았다 숲의 벌거벗은 모습이었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나는 꿈을 꾸었어 

깨고 나면 사라지는 꿈들은 더듬이가 잘려버린 벌레, 다리가 없는 그림자 같았다 내게 몰려와 밥을 달라고 했어

더러운 손을 내밀어 나를 만지려고 했지 그들은 내 옷을 함부로 벗기려고 했다 나는 도망쳤어 가시에 찔려가며 고쿠라 지며 달아났지 하지만 그들은 집요하게 덮쳐와 내 위에 쌓였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오줌보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어

문득 창밖에서 커다란 나비가 날갯짓을 하며 이리로 오라는 신호를 했어 나는 그곳을 빠져나갔지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이었어 파도가 내 발등으로 간지럽게 기어올랐고 나는 따뜻한 바닷물에 잠겨 둥실 떠올랐다


아침이었어, 나 아랫도리는 축축이 젖어있었고 엄마는 이불을 돌돌 말아 나가며 많이 언짢은 표정을 지었그리고 이내 바가지를 손에 들려주며 등을 떠밀었지

소금을 얻어 오라고 나를 대문 밖으로 밀쳐냈던 거야

나는 고아가 된 기분이 들었어 세상은 어딜 가도 혼자일 거라는 참담함에 주저앉고 싶어지는 거지

믿고 살 사람이 없는 세상인 거야 그때 알았어야 해

붉은 해가 지붕 위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었어 나는 누가 보지도 않았는데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어느새 어른, 심지어 늙어가는 어른이지

행여 어린 내가 하늘을 물어준다면 나는 네가 하늘이라고 단호히 말할 거다

너로부터 시작된 하늘에 구름이 고 바람이 불고 별이 진다고 말해주는 거지

그러면 그때의 오줌싸개는 내게 묻겠지 저기 눈에 보이는 하늘과 어른들의 무서운 하늘은 어쩔 거냐고

하지만 이번엔 물러서지 않을 거다 그건 하늘에 들어 있는 것 하늘이 하는 것의 일부분 일 뿐 어른들을 반복하진 않을 거야

그거로는 모자라야 해, 나 같은 어른도 하나쯤은 있어하는 해, 그게 그런 이유

하나가 답이란 건 너무 비루하고 무기력하니까

하늘은 모두를 다 욱여넣어도 모자랐으면 

하늘은 깨끗이 지워내고 무엇이든 새로 그려 넣을 수 있는 스케치북, 오고 가도 아주 가지 않는 만남이자 이별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이야기가 들려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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