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에 당신을 만나, 벌써 6년이란 세월을 회사라는 인연을 통해 함께했네요.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해봅니다. 너무도 발랄하고 환한 웃음으로 "대리님 안녕하세요~"라며 자기소개를 하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늘 밝고 싹싹하고 일을 똑 부러지게 잘 해내는 그녀였습니다. 풍기는 분위기와 이미지뿐 아니라 실제로 패션 센스도 뛰어났죠. 당신은 저에게 이 회사에 다니지 않았다면 패션회사 MD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죠.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 퇴근을 하고 저와 함께 회사 근처 오피스룩을 파는 샵에서 저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던 기억이 필름 쳐 럼 스쳐갑니다.
당신은 늘 완벽하게 외모를 가꾸었습니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가운데 늘 완벽한 메이크업과 최신 유행하는 패션의 옷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액세서리 매치하는 것이 제 눈엔 참 대단해 보였어요. 샵에서 받은 매니큐어와 여름에 특히 빛을 발하는 페디큐어 그리고 피부관리까지 모든 걸 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어요. 당신 곁에 서면 나는 향긋한 향수까지도요.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그 사람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준다고 하죠? 완벽한 본인의 외관을 가꾸는 만큼 저는 당신이 일 또한 그렇게 완벽하게 관리할 것으로 믿어요.
당신의 모습을 보면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올라요. 저도 예나 지금이나 나름 최선을 다해 저를 가꾸고 꾸며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새해 벽두의 목표인 다이어트는 늘 저와 함께 하죠. 저 또한 잘 가꾸고 호감 가는 외모는 프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지금은 캐주얼을 입고 출근하는 회사 문화가 정착되었으나, 우리 다 알다시피 우리가 입사한 십 년 전만 해도 오피스룩을 갖춰 입어야 했잖아요. 그때 저는 참 옷 사는데 돈을 많이 썼어요. 게다가 아무 옷이나 못 입는다며 백화점에서 정품만 구입했었잖아요.
오히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니 소비를 합리적으로 하더라고요. 온라인샵, 아웃렛도 잘 이용하고 스트릿 샵에서도 저와 어울릴 찰떡같은 옷을 찾아내죠. 오피스 레이디로서 회사의 꽃이라고 생각하며 다니던 시절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경쎴던 제 모습이 기억나요. 주요 회의에 들어가면 안 그래도 다 남자라, 왠지 여자로서 프로 패션 한 모습을 보이고, 또한 무시당하지 않고 대우받기 위해 외관까지도 신경 쓰는 것이 나의 능력과 일할 때 준비된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정장을 입어야 했던 시절에 캐주얼을 입을 수 있는 금요일이 되면 저의 패션센스를 뽐내고 싶어서 늘 최신 유행의 옷을 입었어요. 롱부츠라던지, 미니스커트라던지, 치마에 청남방과 운동화를 믹스 매치한다던지요. 그리고 운동회 때면 스포티함을 뽐내며 운동화에 신경 썼던 것으로 기억해요. 회색의 회사에서 이렇게라도 자아를 드러내고 싶었지 않나 싶어요.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출근복장이 캐주얼로 바뀌면서 남자들도 여름에는 반바지를 입고, 여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노출만 아니라면 미니스커드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었네요.
얼마 전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사회 초년생이 여자 직원이 엄청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때 기억해요? 당신은 치마가 너무 짧다고 눈살을 찌푸렸고, 또 다른 우리의 여자 선배는 "저 나이 때는 저럴 수 있지~."라며 귀엽게 바라보더라고요. 저는 우리의 왕언니가 그렇게 보는 시선에서 여유를 느꼈어요.
저도 한때는 패션이라면 뒤지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더 자유롭게, 더 개성 있는 옷을 입고 출근할 수 있지만, 13년 차가 된 요즘은 오히려 문난한 옷을 찾아 입게 돼요. 당신이 인정할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어리게 보이고 싶고, 이뻐 보이고 싶은 여성으로서의 본능을 충실하면, 상대적으로 남자가 많은 회사에서는 선입견을 가지고 저를 보더라고요. '저렇게 꾸미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이 일은 제대로 할까?' 그 선입견을 넘어서 일로서 능력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건 아마도 이제 연차가 높아지다 보니, 회사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만으로 '꽃'같이 상큼함을 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저는 제 패션 전략을 조금 바꿨어요. 여성스럽게 보이기보다 영하게 보이는 것으로! 그래서인지 최근 슬랙스에 민 자티를 바지 안으로 깔끔하게 넣고 분홍색 스니커즈를 신었을 때, 좋은 반응을 많이 들었어요. 저 나름대로는 꼭 치마를 입지 않아도 여성스러움을 아주 살짝만 보이면서도 부담 없는 편안함이 주는 신뢰를 풍기는 패션이라고 자체 평가합니다.
꽃 같은 당신의 패션센스를 저는 죽어도 못 따라갈 거예요. 그리고 수년간 필라테스로 다져진 당신의 군살 없는 몸도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기에 저는 당신이 참 좋아요. 지금처럼 멋진 후배가 되어주세요. 저도 늘 그랬듯 요가와 필라테스 그리고 댄스를 섭렵하며 저를 가꿀게요. 그리고 저의 패션 전략은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것도 지금처럼 센스 있게 캐치해서 칭찬해주셔요^^ 당신의 관심은 늘 저를 기분 좋게 하니까요.
우리 여자가 귀한 회사에서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며, 격려하며 잘 헤쳐가요.
당신의 존재 자체가 제게는 큰 힘입니다.
2021. 10월 가을인데 겨울 같은 어느 날,
환절기에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하다 당신을 생각하는 아는 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