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연수단원 갈라 콘서트>
무대에서의 삶을 꿈꾸는 청년. 그들에게 열린 길은 그리 넓지 않다. 국립예술단체 청년교육단원 육성 사업은 무대 경험을 쌓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국립발레단 연수단원을 선발하는 목적도 그러하다. 수확의 계절, 연초부터 갈고닦은 기량을 펼치는 무대와 마주했다.
지난 11월 19일, ‘국립발레단 연수단원 갈라 콘서트’가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렸다. 이곳은 한국에서 첫 발레 작품을 올린 의미 있는 공간이다. 1946년 한동인은 국내 최초의 발레단인 서울발레단을 창단, 그해 가을 <라 실피드>를 공연했다.
발레의 역사가 시작된 극장에서 젊은 공연예술가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다. 등장하는 무용수는 심장박동을 객석에 옮겨놓고 <파리의 불꽃> 그랑 파드되를 수놓는다. 화려함과 역동성의 접점을 찾아가는 정한서와 김동근의 이인무에 이어, 이영철의 창작 안무 <FALL>이 비우고 채워지는 계절의 서정을 노래한다. 밝아지는 곳(것)과 어두워지는 곳(것)의 희미한 경계를 김현지, 김규현, 박요셉은 지우고 새로 만든다.
프로그램 중 으뜸으로 채도 높은 무대는 <Debutante>. 사교계에 발을 내딛는 벅참을 고스란히 발랄한 몸짓으로 드러낸다. 쾌활함의 색채를 연구한 안무가는 송정빈. 데뷔탕트와 마주한 순간은 대다수 관객은 처음으로 마주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것 같은 예감. 강효형 안무의 <지신밟기>는 정월대보름 풍습과 발레를 접목한 작품인데, 창작 발레가 확대할 수 있는 영역을 고민하게 한다. 이하린, 최주원, 여정연, 박지혜, 정한서, 이예진은 피아니스트 손가락처럼 움직이기로 약속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고팍>도 빼놓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민속무용을 뿌리에 둔 발레는 날아오를 듯이 점프하는 동작이 인상적이다. 힘찬 비상을 보여준 발레리노는 김규현. 환상미를 끌어모은 <라 실피드>의 주역을 맡은 김주아, 박요셉의 가슴은 78년 전 시월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한층 크게 들렸을지도.
상상 속에서만 발레 무대에 서본 적 있는 관객. 그중에 한 사람인 나는 ‘바질’ 캐릭터가 가장 탐난다. 바질의 솔로 바리에이션은 매번 새로움을 선사한다. 연둣빛은 연둣빛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려준다. 키트리와 바질로 분한 양영아와 김동근. 그들의 <돈키호테>로 국립발레단 연수단원 갈라 콘서트는 막을 내린다.
극장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 귀가했다. 서둘러 마련한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에 이끌렸기 때문. 젊은 공연예술가의 오늘 무대 경험이 이렇게 반짝일 듯하다. 더 큰 무대에서 심장을 얼어붙게 한 캐릭터로 더러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돌려주지 못한 심장박동을 그곳에 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