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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Aug 02. 2024

몸의 언어가 응축하는 곳, 발끝

KNB 무브먼트 시리즈 9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이내 적확하지 않은 표현임을 깨닫는다. 과거의 한 시점에 도착했다고 바꿔 쓴다. 그리하여 시간이 음악처럼 흐른다. 음악이 시간처럼 흐른다. 그리고 움직임이 흐른다.


  일명 ‘비창’이라 알려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3악장 선율이 무용수를 움직이게 한다. 삶은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는 듯이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그 무거움이 경쾌하게 들리다가도 돌연, 구슬퍼진다. 뒤미처 슬픔에 가려진 환희가 같은 농도로 다가온다.


  음악보다 무용수의 몸이 먼저 말하는 상반된 감정의 언어. 어쩔 도리 없이 베토벤의 생애를 떠올릴밖에.


  젊음이 마냥 제 편일 것 같은 시기에 청각 이상을 감지한 베토벤. 그의 좌절을 무용수의 몸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청력을 갉아먹는 현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오로지 음악. 그 안에서 열정을 회복할 수 있음을 넌지시 말하고 있었다. 움직임의 흐름은.


  잠깐의 멈춤이 바닥에 스며들고 이어지는 2악장. 작곡가는 굉음을 내며 새 피아노를 희롱하다가 애무하듯 부드럽게 타건한다. 고개를 숙이며 피아노 쪽으로 한쪽 귀를 가져다 댄다. 베토벤으로 분한 게리 올드만의 명연기가 돋보이던 영화 <불멸의 연인>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괴팍함을 무장하여 치명적인 약점을 감추던 베토벤은 완벽하게 혼자라고 여기자 피아노 음 하나하나를, 그 진동을 몸속에 새기고 있었다.


  이윽고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에 가사를 붙인 곡 ‘Music of the Angels’을 부르는 보이소프라노 조셉 맥매너스의 목소리까지 데리고 왔다. 불안을 떨쳐내고 평온을 되찾는 무용수의 몸짓은.


  1악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기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선호현 안무작 <아름다움Me>는 ‘다 보여주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이어질 움직임을 여운으로 남겼다.


  국립발레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Movement Series는 매해 기대되는 공연이다. 안무가의 상상 주머니에 손을 넣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떤 작품이 먼저 잡힐까 자못 궁금했는데, <아름다움Me>가 내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EDM 음악부터가 파격적으로 신선했던 - 안무가 등장 또한 흥미로웠던 - 김준경의 <intersection>, 발랄하고 유쾌한 동작으로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를 들려준 김재민의 <눈썹 세는 날(섣달그믐)>, 발레 관람이 사색의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말하는 김나연의 <Right>와 박슬기의 <OS>, 그리고 징의 울림으로 움직임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울림에 스며들게 만드는, 타악기의 명징한 소리에서 인체의 근원적인 움직임을 찾는 이영철의 <공명>.


  이렇게 다양하고 새로운 작품을 한 무대에서 관람할 수 있다니! 무브먼트 시리즈의 절대 매력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정형화되어가는 발레에 대한 인식. 그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


  게다가 아홉 번째 무대였던 국립극장(하늘극장)에서는 망각에서 시 한 편을 다시 건져내는 행운까지 숨겨놓았다. 무용수의 움직임을 근거리에서 관람하면서 책이 출간하던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들의 발을 보면서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을 펼쳤다. 그들의 몸의 언어를 곱씹으면서 시집의 첫 시, 「발」을 읊조렸다. 


  몸의 언어가 응축하는 곳은 발끝이었다.



          발이 미운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나의 무용수들. 나의 자랑.     


          발끝에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기도할 때 그들의 힘줄을 떠올린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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