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독립'과 '자발적 고립' 그 어디쯤에서
지난여름휴가로 엄마아빠와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그들과 연락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상담을 시작한 뒤로 내 안에 꽉꽉 감춰놓았던 기억들이 터져 나오고부터다.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한 번 터지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으며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아빠는 물론이고 동생과의 연락도 다 끊었다.
엄마는 귀신이 곡할 노릇처럼 항상 나를 찾아냈으므로 이 글도 어디선가 몰래 읽고 있을 것이다. 10대 시절의 싸이월드가 그랬고 20대 시절의 인스타가 그랬다. 은연주라는 필명을 붙였는데도 우연히 카카오 메인에 뜬 내 브런치를 보고 단박에 나라는 것을 알아챘다고 한다. 엄마는 내 브런치를 가끔씩 읽고 있다는 걸 나한테 티 내지 않았지만 눈치 없는 아빠가 그리고 동생이 종종 그 소식을 전했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작은 티끌 하나조차도 모르는, 가장 가깝고 먼 사이.
어차피 요즘은 나도 나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담은 벌써 네 번이나 진행되었고, 여전히 내가 살아온 날들 중 유의미한 부분들을 서술하는데 한창이다. 상담을 시작한 후에 인터넷에 개인 상담 후기 같은 걸 검색해서 읽어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망설이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나는 표현에 거리낌 없는 편이고 특히 내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는데 재능이 있는 편이다. 다만 내가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가끔은 무의식이 먼저 감정을 억압하거나 희석시켜서 별 거 아닌 일로 만들어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어느 대목에선가 내가 앞으로 재혼 생각이 없고 연애도 원하지 않으며 영원히 혼자 살겠다고 말하자 다소 놀란 눈치였다. 예전에 누군가 내게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법률혼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말하기엔 아깝지 않냐며, 나는 그저 운이 나빴던 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설령 그게 불운이라고 할지언정, 내 선택은 다음의 행운을 시험하느니 아무 일도, 아무 탈도 일어나지 않는 쪽을 택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트라우마로 인한 자기 방어적인 사고방식으로 굳어진 것 같지만 그것마저도 내 일부로 받아들였다. 대신 지금처럼 혼자서 주식으로 재산을 불려 나가며 1년에 한 개씩 보석을 사고, 여행도 예전처럼 자주 다니기로 결심했다. 그럼 적어도 늙어서 돈 없다고 초라하고 궁색하진 않겠지.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따금 나를 엄습한다. '혹시 늙어서 가족이 없으면 외롭지 않을까?' 무의식적인 불안이 주기적으로 올라와서 나는 스스로 내 가족을 먼저 버리는 연습부터 하기로 했다. 독하지 않고서야 보통 사람들은 자기 가족을 아무 이유 없이 버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서 잘 살아남으려면 지금 가족도 없어야 한다. 나약하고 외로운 나는 아직도 밤마다 울고 자주 죽는 생각을 한다. 늘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던 인생은 이제 더 이상 빛을 잃은 듯 즐겁지 않다. 이게 다 홍길동 때문이라고 그의 탓을 하고 싶지도 않다. 깊게 숨겨둔 우울로 인해 내 삶만 덧없다. 일상에 지장이 없으니 우울증 약은 아무 쓸모없다.
지금 회사에서 나는 '생각보다 독한 사람'으로 불린다. 개같이 힘들어도 욕 한 번 하고 웃으면서 끝끝내 일을 마무리한다고. 그렇게 이번 달에도 월 초과근무 시간을 넘겼고, 내일도 모레도 야근이 예고되어 있다. 예전에는 독하다는 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늘 대가리 꽃밭, 댕댕이, 순수함 이런 유치한 단어들이 나를 따라다녔다. 하나도 독하지 않아서 오죽하면 자기 가족을 버리는 연습 중인 내가 독하다는 평을 받는 게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나는 독한 게 아니라 내 소원대로 단단해지고 있나 보다. 어떤 길이든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