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책임감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자살자를 위하여>, 마광수.
최대한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삶의 모든 부분이 나에게서 등 돌리는 듯한,
그런 무기력한 순간들이 있다.
내가 우울할 때마다,
가혹한 부조리의 쓰나미가
나를 집어삼키려 할 때마다
꺼내 보는 시이다.
언뜻 보면 침울하고 자살을 찬양하는 듯한 이 시는,
그 어떤 말보다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나에게 살아갈 용기를 북돋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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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는 지금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꽃이 자기 색을 고를 수 없듯이,
그럼에도 자신의 색을 자유롭게 발산하듯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님을.
그 무엇도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의무라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 자신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
그것으로 삶의 짐은 충분하다는 것을.
살아간다는 책임감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자신을 그만 괴롭혀라
인생의 본업이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 외의 것은 모두 부업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질없는 것들에 너무 힘들어하질 않기를
그 누구도 나를 욕할 권리가 없음을
나는 이곳에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온 것이지
그 어떤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