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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Feb 15. 2024

3. 그녀는 연예인처럼 화려했다.



부원장은 영국에서 학위를 취득했고, 유학을 다녀왔으며,

무슨 대회에서 수상을 한 재원이라는 소개가 쏟아졌다.

유명 어학원에서 재등록률 1위 ‘마감 일타 강사’였다고 한다.

원장이 침을 튀길수록, 나는 졸아 들었다.

사람만큼이나 화려한 프로필이었다.





1.

작성일 : 4월 5일 저녁 10시 01분

작성자 : 산토리니의 오후


학원에 피바람이 불었다.


초창기부터 십 수년간 일했던 부원장이 잘렸다. 교재비를 빼돌렸다 걸렸다는 말이 돌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었다. 그가 데려온 강사 몇몇도 함께 떠났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봄바람이 불었다. 원장에게만.

새로 온 부원장은 연예인처럼 화려했다. 황금빛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다들 뭉툭한 슬리퍼를 신은 가운데 홀로 드높은 통굽으로 복도를 누비는 그녀는 단연 눈에 띄었다.

부원장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그닥 없다. 어디서 왔는지, 경력은 얼마인지, 갑자기 부원장으로 부임한 이유, 같은 건 아무도 몰랐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었다.  

원장이 부원장을 바라보는 눈길이 너무 뜨거워서 땀띠가 날 것 같았다. 부원장이 강사들을 모아놓고 교육할 때마다, 원장은 팔짱을 끼고 지긋이 지켜봤다. 부원장은 모르겠지만, 원장은 자신을 마치 드라마 남주로 여기는 듯했다.  


“알아? 부원장이 원장 ‘요거’ 라잖아.”

영어가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나는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원장님 새끼가 뭐요?”


영어는 나를 바보 보듯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나이 먹은 내 잘못이지. 요새 젊은이들은 세컨드를 뭐라 그러나. 첩이라는 말은 안 쓰겠지. 원장 바람났다고. 양다리라고!”


원장 사모를 본 적은 없지만, 자식 둘을 키우느라 바쁜 전업주부라고 들었다. 이 학원이 자리 잡기까지, 사모가 수업도 하고 전단지도 돌리며 뼈를 갈아 넣었다고 했는데….

영어가 흔드는 새끼손가락을 보며 생각했다.


아, 원장은 개새끼구나.




2.

작성일 : 4월 06일 저녁 10시 12분

작성자 : 산토리니의 오후


사실 나는 부원장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 원장이 나에게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학원에 새 사람이 올 거예요. 이참에 물갈이를 싹 하려고 생각 중이야. 고인 물은 썩는 법이지. 아, 안 선생은 안심해요. 논술은 쭉 갈 거니까. 무료 수업치고 퀄리티가 높다고 학부모들 반응이 좋아.”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이 놓였다. 다른 강사들은 학벌도 경력도 좋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나 곧 부끄러워졌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든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다니. 얼굴이 벌게진 나에게, ‘새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처음이라 낯설고 잘 몰라요. 많이 도와주세요.”


반짝이는 큐빅이 잔뜩 박힌, 잘 다듬은 손톱이었다.

영국에서 학위를 취득했고, 유학을 다녀왔으며, 무슨 대회에서 수상을 한 재원이라는 소개가 쏟아졌다. 유명 어학원에서 재등록률 1위 ‘마감 일타 강사’였다고 한다. 원장이 침을 튀길수록, 나는 졸아 들었다. 사람만큼이나 화려한 프로필이었다. 어색함과 부러움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몰랐다.  


“몇 살이에요?”

부원장이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스물아홉인데요.”


“아유, 어리다. 좋겠다. 젊어서!”

부원장이 원장을 찰싹! 치면서 까르르 웃었다.

원장이 등짝을 얻어맞고도 흐흐 웃는 걸 보니 더욱 몸이 굳었다.


“난 서른둘이에요. 사회에서 만났지만 편한 언니라고 생각해요.”

서른둘이면 우리 언니랑 나이가 같다. 하지만 이 사람과 언니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부모님의 굳건한 자랑이려나. 가족들과 연락한 지 오래라 알 길이 없다. 


“여기 선생님들은 사이가 어때요? 논술은 실적이 필요 없으니까 경쟁을 안 해서 두루두루 친하게 지낼 것 같아. 선생님들끼리 술자리라도 하면 저도 꼭 불러줘요.”

사실 나는 그런 자리에는 낀 적이 없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부원장이 원장의 냉장고에서 병 커피를 꺼내 쥐여주었다. 이렇게 비싼 커피를 주다니, 꽤 유능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3.

작성일 : 4월 9일 저녁 11시 23분

작성자 : 산토리니의 오후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는데, 소문은 나쁘게 퍼졌다. 

부원장이 학원을 꿀꺽하려고 원장을 꼬셨다는 둥, 

얼마 후 건물 명의가 넘어갈 거라는 둥, 

사실 부원장도 가정이 있는데 원장이랑 바람을 피우는 거라는 둥….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으면, 강사들이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강사들은 나를 크게 경계하지 않고 뒷담화에 열을 올렸다. 부원장이 항상 화제의 중심이었다.


“안쌤, 말해봐요. 나에 대해 무슨 얘기들을 해요?”

부원장이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안 됐지만 내가 전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입에 올리기도 민망해서 차마 옮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자코 있는 자체가, 강사들의 뒷담화를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럴수록 안쌤이 내 편들어줘야 돼. 알았죠? 나 안쌤만 믿어.”

부원장이 내 손을 꼬옥 잡았다. 손톱 색깔이 또 달라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 손톱이 지루해 보였다.

부원장은 커피와 마카롱, 자잘한 액세서리, 이제 질려서 안 든다는 핸드백까지 주었다. 그때마다 학원과 강사들에 대해 물었고, 나는 아는 한 솔직히 대답했다.


선물이 좋아서, 갖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태어나서 받아본 적 없는 호의에 대한 예의였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부모님께 생일 선물을 사달라 어리광을 부릴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나를 ‘두부’라고 불렀다. 왜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이유는 알았다. 두부라는 별명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생일잔치에 초대받았을 때도 숨겨진 초라한 내가 들킬까 봐 다른 약속 핑계를 댔다.

새 사람이 이런 나를 여러모로 살뜰히 챙겨주니 고마웠다. 호의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좋았다. 이런 다정함은 처음이었으니까.     



4.

작성일 : 4월 11일 저녁 11시 59분

작성자 : 산토리니의 오후


바쁘게 돌아가는 학원은 그 자체로 작은 사회다.

이 조그만 세상 안에 얼마나 많은 비밀과 음모와 비난과 오해가 있는 걸까.

원장과 부원장의 사이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군다. 정작 진실에는 별 관심이 없다. 사실이 모호할수록 더욱 신이 나서 떠들며 소문에 소문을 부풀릴 뿐이다. 강사 중에 누구랑 누가 또 불륜이라더라, 그 사이에 숨겨놓은 아이가 있다더라, 그 아이가 이 학원에 다닌다더라 어쩌구저쩌구, 말이 말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지친다, 정말.

인간들이란.             



새로운 댓글 1개가 있습니다.   

 

오후님, 일주일간 많은 일들이 있으셨네요.

올려주신 글이 너무 솔직 담백해서 부끄러운 물건을 숨기는 사람처럼 후다닥 읽어버렸어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할까요

저도 무수한 말 때문에 지친 적이 있었어요. 그럴 땐 정말이지 귀를 틀어막고 싶어 지죠.


머리가 복잡할 때는 그냥 하루하루를 단순하게 사는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맛있는 음식을 차려먹고, 조용한 음악에 집중하고, 일상을 무난하게 꾸리면서 버텨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어요. 입맛이 없었지만 약을 먹으려면 식사를 해야 하니까 냉장고를 열었는데, 계란밖에 없었어요.

오후님의 글이 생각나서 하얀 백탕을 끓였어요.

글에서 본 것처럼 허여멀거니 별 기대가 없었는데, 담백한 맛과 온기가 힘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다 털고 일어났어요.

아, 맞아요! 후추도 뿌렸어요. 후추 덕분인가?


제가 끓인 백탕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댓글에는 사진을 올릴 수가 없네요. 댓글에도 사진 올리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오후님도 뭔가 아주 맛있는 걸 드셨으면 좋겠어요.

제게 힘을 준 온기를 전해드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남은 날도 좋은 날 되세요, 오후님.


작성자: 스페이드




남은 날도 좋은 날 되세요. 

남은 날도 좋은 날 되세요

남은 날도 좋은 날 되세요.


원래 알고 있던 단어들인데

이렇게나 달콤한 조합이라니…


스페이드 뭐야?

혹시 멘트학원이라도 다니는 거야?


*

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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