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암살범 야마가미 데쓰야 이야기
야마가미 데쓰야 MBTI 분석
이 세상은 비애로 가득찬 통로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 위를 오가는 순례자일 뿐이다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2022년 7월 8일, 일본 전 총리 아베 신조의 총격 암살로 온 세상이 뒤집어졌다. 나라시 인근에서 가두 연설 중이던 아베 신조 총리가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쓰러진 것. 범인은 당시 41세였던 야마가미 테츠야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정치 테러가 의심되기도 했지만 야마가미 자신이 원한에 의한 범행임을 밝히면서 초점은 그의 불우한 성장 환경으로 옮겨 갔다.
야마가미 데쓰야는 상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어머니의 과도한 종교 활동 때문에 4세 때 아버지가 투신 자살했다. 어머니가 전재산을 교회에 갖다바치는 바람에 그의 3남매는 유년기 내내 곤궁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명문대에 진학했으나 돈 문제로 중퇴하고 다시 전문대에 입학한다. 이후 끼니 해결을 위해 해상자위대에 입대했다. 군 복무 중에 자살 시도를 했는데 이유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과 여동생에게 생명보험금을 타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2014년에는 친형이 구 통일교 관계자를 칼로 습격했다 실패한 후 돌연 자살해 버린다. 뒤이어 어머니와 여동생이 잠적했고, 이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지내면서 끝내 구 통일교회를 향한 원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요컨대 그는 종교에 헌신하느라 양육에 소홀했던 부모로 인해 고통을 겪은 전형적 종교2세로, 이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종교2세 이슈가 크게 부각되었다.
명석한 인재임에도 가정상황 때문에 빈곤을 면하는 데에만 급급해 제대로 된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고 단기적 선택으로만 점철된 삶을 살았다. 오랫동안 암투병을 해온 친형이 통일교에 복수하려다 실패 후 자살했고 아버지의 자살도 어머니의 종교가 직접 원인이었으니 그의 모친은 실로 가정 내 만악의 근원이었다. 이 모든 고난를 겪게 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깊을 법도 하건만, 그의 트위터 등에서는 ‘어머니를 돕고자 했다’는 언급이 반복해서 나온다. 어머니에 대한 애착은 상당히 강했던 듯. 부정적 감정이 어머니를 향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열등 Fi).
그는 자살한 형의 장례식장에서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될텐데 왜…”라고 외치며 절규했다고 알려졌다. 형은 어렸을 때 소아암을 앓아 실명하고 이후로도 투병을 계속해온 가련한 사람으로 자신보다 더 불행했던 유일한 사람. 그런 형의 죽음은 충분히 트리거가 될 만했다. 게다가 형이 인생 최후의 순간에 시도한 구 통일교 간부에 대한 테러 행위는 망자의 마지막 소원같은 것이 되었을 터, 그 원념을 동병상련의 동생이 승계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눈길을 끄는 점은 삶이 흔들릴 법한 굵직한 사건을 여럿 겪었음에도 정작 범행 시점까지 시간이 길다는 점이다. 원한에 기반한 열정범죄라 하기엔 (살인은 대표적 열정범죄다) 시간 지평이 좀 길다. 트리거가 와도 몇 번은 왔다 지나갔을, 그 길고 긴 시간동안 그는 무엇을 한 걸까?
아래는 야마가미 인생의 연대기
형의 죽음이 트리거가 됐을 수도 있다고 썼지만, 사실 그때로부터 실제 범행까지는 장장 8년의 간극이 있다. 왠만한 불운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꿋꿋이 생활하던 그는 형의 시신 앞에서 목놓아 절규하고는 이후 입을 꾹 닫고 철저한 침묵속에서 8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를 ISTP로 보는 견해가 있다. 총리 암살이라는 범행의 반사회성, 그리고 (독살이나, 청부살인이 아니라)몸소 무력을 쓰는 선택을 한 점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정치인을 죽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삶을 망가뜨린 대상을 징벌하려는 의도였지 특별히 사회를 흔들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암살 당시 아베는 현직 총리도 아니었다. 내란을 꾀한 것도, 아베 파를 멸절시키려는 목적으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아베가 선택된 이유는 단지 그 외조부가 통일교를 일본에 유입시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야마가미의 범죄는 사회 전복의 목적(테러)이 아닌, 강렬한 원한에 기반한 열정 범죄로 봐야 한다.
야마가미가 조용하게 지내며 타인과 어울리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낮은 사회성은 ISTP 특유의 ‘열등한 Fe 특성’과는 결이 다르다. 생애 내내 불운을 떨쳐내지 못했지만, 명문대를 갈 길이 막히자 전문대로 방향을 틀고, 군 입대를 하고, 제대 전후로는 자산 관리 자격증을 따는 등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면서 삶을 이어갔다. 불행 속에서도 시스템을 인정하고 패배에 승복하며 제도 안에 머물렀지, 분노를 드러내며 판을 깨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자기연민에 취하지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지도 았았다(얹혀 살 가족도 없었지만). 만일 그가 사회와의 접점을 끊어버리고 칩거했거나 좀 더 이른 시점에 폭발했다면 그를 ISTP나 INTP로 보는 관점에 어느 정도 타당성을 인정했을 거다.
야마가미보다 훨씬 정도가 약한 시련에도 사람들은 쉽게 퓨즈가 끊어지곤 한다. 부의 불평등 운운하며 생면부지의 부자들을 납치해 죽이고 사체를 먹었던 지존파, 불우한 환경을 비관해 과외 강사를 사칭, 자신의 불행에 책임도 없는 사람을 살해한 정유정 같은 인면수심도 있는데 30년이나 묵묵히 불행을 견뎌낸 야마가미에게 ‘반사회성’ 딱지는 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라면 진즉에 꼭지가 돌아도 몇번을 돌았을 시련을 거의 30년이 넘게 감내하며 묵묵히 살았다. 인내의 실이 끊어진 후에도 그의 원한은 요란하게 튀지 않았다. 오래 참은 만큼 축적된 분노가 상당할텐데 그의 보복 행위는 냉정했다. 의도는 명료했고, 범행 수단을 결정할 때는 철저하게 계량적이었다. 나는 야마가미를 INTJ라고 본다.
그의 범행은 전형적인 Ni-Fi 범죄다. Fi 가 불을 때고 기름을 부으면, Ni가 행동의 이유와 의미를 두고 직물을 짰다. 그렇게 Ni가 다진 길을 타고 다시 Fi가 모든 걸 불태우며 직진한다. 서서히 이성의 힘이 잠식돼 간다 —정신줄을 놓은 INTJ의 염세주의 악순환(loop)이 작동하는 모습이다.
그의 범행은 묘하다. 분명 강렬한 원한이 존재하는데, 행동 양상은 뜨겁지도 격렬하지도 않았다. 그의 운명은 2014년 형이 자살했을 때 이미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 형의 죽음을 목격한 동생으로서 ‘가족의 원한’을 승계했다는 논리 구성을 취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격정에 휩싸여 칼춤을 추는 건 야마가미의 DNA에 없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장고하면서 각종 불순물이 가라앉고 투명한 의지만이 남을 때까지 그는 충분히 뜸을 들였다. 증류에 증류를 거듭한, 순도 높은 염(念)에 달한 것. 방향성이 구체화되고 최종적으로 ‘확실’해질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블로거 요네모토에게 보냈던 이메일과 트윗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그의 최종 목표가 통일교 조직 자체에 데미지를 가하는 것-임은 분명했다. "통일교의 1인자를 죽여도 권력투쟁 중이던 2인자를 이롭게 한다면, 통일교 전체에선 수장만 교체될 뿐 본질적 피해가 없다고 볼 수 있다."는 논조로 그는 적고 있다. 즉, 사람을 죽이는 건 목표가 아닌 수단이었다. 통일교를 쇠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안의 핵심 부품 격인 인물들을 파괴하는 게 필요했을 뿐이다. 한편 그는 편지에서 “아베는 진짜 적이 아니다”라고도 쓰고 있다. 평범한 열정 범죄라면 누가 죽던 사실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저 ‘내 안’의 분노가 표출되는 것만이 중요할 테니깐(일명 '묻지마'범죄). 그러나, 야마가미는 '맥락이 무척 중요한' 범죄자다. 의도도 중요하고, 행동의 의미도 중요하며, 타깃도 중요하고 수단도 중요한, 한마디로 <의미 과충전> 범죄.
내가 이렇게 보는 근거는 야마가미가 결행에 나서는 이유가 대단히 또렷하기 때문이다. 계획을 변경하고 저격 수단을 바꿀 때에도 그는 체계적 이유를 댄다. 전체 맥락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합리적 이유를 들어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이유는 납득이 간다. 도대체 모든 걸 포기하고 정신줄을 놓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런 초지일관의 특성 때문에 나는 그를 INTJ로 보고 있다(여기서 ‘초지’는 '빅픽쳐').
내면의 어딘가가 또각-하고 부러졌는데도 그의 행태는 여전히 격정적이지 않다. 뚜껑이 열리고, 꼭지가 돌고, 퓨즈가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야마가미 데쓰야는 여전히 플라멩코가 아닌, 승무의 춤사위를 보여준다. 안에서는 천불이 나지만, 겉은 점점 차가워진다. 목표 완수를 위한 효율적 전술과 수단을 찾는데 몰두한다. 그러나 야마가미의 내면은 뜨거웠을 것이다. 냉정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바깥에서 관찰하는 모습. 보복 행위의 정당성을 가다듬고 계획의 성공 확률과 수단의 임팩트를 계산하는 행동이 냉정해 보일 뿐이다. 세상엔 뚜껑이 열리면 물불 안가리는 사람이 많으니깐. 하지만 그건 INTJ의 M.O.는 아니다. 마음 속이 뜨거울 수록 의도는 선명해지고 행동은 더 기계적이 된다. 보통 사람이 견디기 힘든 불행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고자 수십년을 치열하게 버티던 사람이 한번 탈선할 때는 허투루 임할 수 없는 법이다.
Ni가 염세적 빅픽쳐를 완성하고 나면, INTJ의 흑화는 끝이 난다. 다음은 계획과 실천의 문제만 남는다. 단순한 로지스틱스의 문제인 것이다. 야마가미 역시 범행 1년 여 전부터는 실행만을 집중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한학자(문선명의 아내)를 저격시 상징적 의미가 가장 크다. 하지만 그녀를 죽이면 권력투쟁 중인 문선명의 다른 아들들을 돕는 꼴이 되어 행동이 무의미한 게 돼버린다.
고위직 모두를 동시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혼자 움직이는 나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행안.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그래야 확률이 올라간다.
무기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폭탄을 사용해야 적중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폭탄 실험 후) 폭탄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총이 더 신뢰할 만하다. 하지만 나의 사격 실력은 형편없으니 산탄총이어야 할 것이다.
분노에 기반해 탈선하면서도 '행동이 유의미해야 하고, 수단은 목표 달성에 효과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일반 원칙이 빈틈 없이 작동 중이다. 효용과 효율을 추구하는 Te의 작용으로 그가 일말의 냉정함은 유지했다는 증거다. 그의 범행은 사적 원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사회를 위해 의로운 일을 한다는 최소한의 ‘빅픽쳐 감각’이 드러나 있고(이런 점은 반사회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친사회적이다. 통일교가 사회의 이익에 반하므로 사회를 위해 제거한다는 논리—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주관적’ 논리다), 그의 논리 또한 큰 비약 없이 차분하게 전개된다. 그를 INTJ로 보는 이유다.
(*중대한 논리의 비약은 바로 통일교의 죄에 대해 아베가 독박을 쓴 부분인데, 이는 야마가미 스스로 오류를 (사전에)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강한 ‘원념의 힘’으로 논리의 간극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추신
'직접 몸을 쓰는 범행 방식을 택했고 총기와 폭탄 제조를 직접 하는 등 ’맥가이버‘ 같은 면모가 보이므로 야마가미는 ISTP'라는 주장에 대하여
아베 암살을 결심한 이후로도 그는 폭탄과 총기 사이에서 고민을 계속했다. 수단의 적정성과 자신의 역량, 성공 가능성을 놓고 저울질을 계속한 점에사 기능 위계 내 Se와 Te의 존재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하지만, 폭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거사가 임박해 다시 총기로 방향을 튼 에피소드, 총기 제작 중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점으로 볼 때, ISTP로 보기에는 도구와 기계에 대한 감수성이 많이 쳐진다고 봤다. 그는인터넷에서 설계도를 다운받고 튜토리얼을 반복 시청하며 엄청나게 고생을 한 INTJ다. 그렇지만 수년에 걸친 집념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산탄총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끝으로, 그가 블로거 요네모토에게 보냈던 이메일(번역)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