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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Apr 04. 2024

그는 관심이 필요했을 뿐이다

틈만 나면 전화하거나 지구대로 찾아와서 직원들을 괴롭히는 민원인이 있다.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냥 시시때때로 방문해서 답도 없는 시비를 걸어댄다. 전화로 시비를 걸 때는 녹음을 하며 직원들의 말실수로 꼬투리 잡는다. 그에게 전화가 걸려오거나 그가 올 때면 직원들은 얼굴이 찌푸려진다. 당연히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와 직원들은 마치 말꼬리 잡기를 하듯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지구대에 발령받은 지 한 달 반이 지나가는 시점에 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야간 근무를 하던 새벽 5시 누군가 지구대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커피를 한잔 달라고 말했다. 커피를 한잔 타주자 그는 고소가 어쩌고저쩌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순간 '아 이 사람이 직원들이 말하던 그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직감했다. 


문득 '소통 공부한 것을 한 번 써볼까?' 하는 맘이 들었다. 우선, 그의 이야기를 그냥 가만히 들어주었다. 특별한 대꾸는 하지 않고 간단한 추임새만 넣어 그가 이야기를 더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아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전환했다. 

"이 시간에 어딜 가시는 거예요?"

"나? 고물 두 바리 해서 시청 갔다 와야 해"

"그럼 벌써 한 바리 한 겁니까?"

"아니 아직 못했어 이제 가는 중이야"

"그럼 몇 시에 일어나신 겁니까?"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났어"

"아따, 부지런하시다. 많이 피곤하시겠네요"

"어, 많이 피곤하지. 그래도 어쩌겠어 먹고살아야지"

"네 힘드시겠네요. 빨리 고물 두바리 하러 가셔야죠."

"어 그래 커피 잘 마셨다"

"네, 조심히 가세요"

그와 나의 대화다. 그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더니 그는 침을 튀겨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내가 호응해 주자 그게 마음에 들었던지 마지막엔 커피 잘 마셨다는 감사의 인사까지 건네며 지구대를 나섰다. 

그 뒤 두 번 더 방문했고 그때마다 내가 그를 맞이했다. 지속해서 일은 잘했는지 물어보며 피곤하니까 이제 집에 가서 좀 쉬시는 게 좋다고 말하니 그도 그게 좋겠다고 말하며 순순히 돌아섰다. 그것을 지켜보던 막내 순경이 뒤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주임님, 희한하게 주임님하고 얘기만 하면 5분 안에 별말 없이 돌아가네요" 

 

그 뒤로도 방문할 때마다 내가 그를 먼저 맞이했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지속적인 관심으로 호응해 줬더니 역시 별말 없이 돌아섰다. 그날 밤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전화를 받은 직원이 전화를 끊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우와! 제가 여기 근무한 지 2년 만에 저 사람한테 감사인사를 다 들어보네요", "아까 내 이야기 잘 들어줘서 고맙데이 나 잘 들어왔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모두 큰 소리로 웃으며, 앞으로 내가 그 사람 전담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활용한 것은 아주 간단하다. 첫 번째로는 말을 끊지 않고 그냥 들어주며 호응했고, 두 번째로는 그에게 관심을 나타내며 이런저런 질문과 그 답변에 대한 호응을 나타냈을 뿐이다. 그는 아마도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하고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기 때문에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마다 그는 신나 했고, 늘 인사하며 돌아섰다. 앞으로도 그는 나를 계속 찾을지도 모른다. 다음엔 시간이 된다면 10분은 더 들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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