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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기쁨을 심은 아침

종이필터지

by 모든

한국과 인도를 오갈 무렵, 2018년 12월 겨울이 되어 합정동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던 난 종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어떤 책을 고를까 기대하고 들어간 발걸음이 차갑게 굳었다. 구입할 만한 책이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돌고, 또 돌다가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나무를 심은 한 사람이 등장한다. 오랜 세월을 뚫고 도래할 미래를 그리며 발길 닿는 대로 힘껏 씨앗을 심고, 묘목을 심는다. 누구도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숲이 될 거라곤 감히 예측하지 못했다. 아니 관심 없었다. 범인들은 도무지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책장을 덮을 무렵,

그가 심은 무성한 보리수는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는 문장에서 두 손이 멈춰졌다. 참 마음에 드는 문장이었다.


오묘 로스터스에서 매일 마주하는 종이필터지는 어디선가 홀로 자랐을 나무의 몸통이 톱에 잘려 이곳까지 온 것이다. 나는 장 지오노의 마음으로 얇은 나무의 몸통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곱게 갈린 원두의 육신도 담는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물 주는 마음으로 또다시 물을 붓는다. 속절없이 흐르는 물줄기 속에 종이필터지는 차곡차곡 하루를 심는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화려한 봄의 제국을 이룰 테지. 꽃도 피고, 새도 날아들고, 열매도 맺히고, 웃음도 피어나겠지.


12월 3일 아침, 장 지오노의 마음으로 뻐근한 부활의 기쁨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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