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ry를 아세요?

by 모든

안녕하세요 모든입니다. 브런치에도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겠죠? 네, 저도 목사입니다. 인도에서 선교를 마치고 2023년 1월에 인천 남동구에서 교회를 시작했으니 벌써 3년이 되어 갑니다. 지금은 리뉴처치 목사이자, 오묘 로스터스 대표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무수한 감정을 폭포수처럼 경험했습니다. 인도선교 전, 제가 속한 감리교신문에 “성서와 인문학” 원고를 요청받아 8개월을 연재했습니다.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30대 목사가 오랜 기간 연재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이었습니다. 1회분이 나가고 춘천에 계신 모르는 목사님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젊은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분이니 선교도 좋지만 국내에 남아 복음에 힘써달라고 말입니다. 감사하지만 그럴 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마흔이 훌쩍 넘었습니다.

2022년 5월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목회자로 오라는 교회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감리교홈페이지 구인구직란을 아무리 봐도 목사로 지원할 수 있는 나이는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얼마간 백수로 지냈습니다. 순종해서 선교사가 되었고, 복귀했는데 오갈 데 없는 백수 신세라는 사실에 수개월을 눈물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다음 해, 그러니까 2023년 1월에 단독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백수인 저는 돈이 없었지만 제가 목회할 교회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기적처럼 개척교회를 시작했지만, 감사의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새벽과 밤마다 저 공간을 기도로 채웠지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시작한 후 일자리를 구해 일하며 공예배 시간은 목사의 일을 하였습니다. 교회 계약 기간은 2년이었습니다. 계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임대인의 사정으로 경매로 넘어가 2년이 지난 올해 1월, 교회 내 모든 물건을 처분하고 예배드리기 위해 얼마 되지 않는 성도님들과 매주마다 공유공간을 찾아다녔습니다.


새벽예배 공간이 없어서 매일 아침 7시에 성도님들에게 큐티(성경을 읽고 난 후 작성한 신앙의 글)를 나눠드렸습니다. 새벽예배를 대신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큐티를 작성하며 제가 더 좋았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나고 오랜 시간 교회를 쉬고 계시던 세 분이 아침에 나눠드린 큐티를 통해 교회에 등록하셨습니다. 떠돌이처럼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5년 정도 카페 준비를 했습니다. 로스팅과 브루잉 카페인지라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송도와 인천 논현동에 카페를 오픈하고 싶었지만 마땅치 않았고, 결국 예비창업자로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았고, 많은 분들의 큰 도움으로 인천 남동구 서창동에 카페 겸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상당한 시간을 준비했지만 자영업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가야 할 길이기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제 인생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함석헌, 윤동주, 미우라 아야코, 빈센트 반 고흐, 로맹가리, 서경식, 조르바, 그리고 래리입니다. 만약 제가 분해된다면 제 몸에서 저들의 목소리와 문장, 뼈와 피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멋스러움으로 치면 누가 조르바와 견줄 수 있을까요? 그는 그저 무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그 결기를 감히 따라갈 수 조차 없는 자유한 인간.


그러던 중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에서 래리를 만났습니다. 어수룩해 보이지만 바라는 삶을 따라 걸어갈 용기를 지닌 청년이 래리입니다. 소설 속 래리를 생각하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르바는 그야말로 넘사야. 나는 자유다라고 외치고는 싶지.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 그리고 곧이어 “그래, 래리가 있잖아. 조르바처럼 어록 제조기도 아니고, 호탕하진 않지만 누구라도 따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좀 더 둥글둥글한 자유를 가진 래리가 될 순 있잖아.”


저는 잘하는 게 많지 않습니다. 목사이지만 신학지식도 조금, 기타도 조금, 노래도 조금, 글도 조금, 열정도 조금. 뭐 전부 다 조금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저, 이거 잘해요!”라고 나름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건 바로 질문에 답하는 일입니다. 말을 잘하기도 하지만 말을 잘할 수 있는 오랜 준비기간이 있었습니다.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철학적 이해, 신학과 성경 지식, 예술과 문학 기반의 사고방식, 무엇보다 교회 밖 시간이 길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졌습니다.


11월 초부터 라떼를 마시는 부부가 계십니다. 매일 오전에 오셔서 노트북 작업을 하다가 가십니다. 지난주부터 대화가 시작됐고 이번 주부터 남성분과 일대일 성경공부와 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여러 상황 속에 계신 남성 손님에겐 저 같은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대화가 시작된 후 지난주 목요일, 저에 대해서 궁금해하셔서 제가 쓴 글과 공저자로 참여한 번역철학서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초등학교 5학년 아들에게 주시라며 다섯 권의 책을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 손님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과학 스테디셀러 저자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너무 유명해서 부모라면 모를 수 없는 도서였습니다. 오늘 오전, 카페에서 그분과 이야기 나누는데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만약에 목사님이 일반 교회에 계셨다면, 저는 목사님 같은 분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제 의지로 교회에 가진 않았을 것 같거든요. 이렇게 카페에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해요.”

저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 나머지 콤마로 살아가는 듯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마침표가 아니면 좀 어때. 조금씩 완성을 향해 가는 콤마도 괜찮잖아?!”라며 너스레를 떠는 목사를 꿈꿉니다. 비록 교회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서 설거지하고, 커피를 내리고, 자정이 넘어서까지 로스팅하는 일… 그게 마침표가 되지 못한 콤마일지언정 콤플렉스는 되지 못하게 하려고 제 맘을 다스립니다. 비록 흠모할 만한 조르바가 되진 못하더라도 래리는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부활의 기쁨을 심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