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얘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의 담임 선생님이야. 선생님은 너희 앞에 서면서 한 번도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조금 부끄럽네. 너희가 몸을 배배 꼬며 발표할 때 대체 왜 저럴까 싶었는데, 이런 기분이겠구나. 조금은 이해가 된다. 쑥스러워서 차마 너희 얼굴을 보고 말하지 못할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써. 선생님 말 많은 거 알지? 오늘도 할 말은 많지만 최대한 짧게 쓰려고 노력해 볼 테니 이번만큼은 선생님의 성의를 봐서라도 잘 들어줘.
요새 선생님은 학교에 오는 게 나름 즐거워. 솔직히 예전에는 출근하는 게 힘들었는데 (물론 요즘에도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너희가 또 무슨 짓을 벌일까 나름의 기대도 된단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는데, 참 이상하다. 모르는 사이에 빗물이 땅에 스며들듯 너희에게 스며들었나 봐. 사실 학기 초의 선생님은 너희에게 억지로 웃어 보이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너희에게 선생님의 진짜 미소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
사실 선생님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이 정말 많았단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계속해도 될지 자꾸 의심하게 되는 거야. 하는 일에 비해 대우는 소홀하고, 선생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고, 혹시 나를 누가 고소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나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데 아무도 선생님을 보호해 주지 않더라고. 그러다 보니 선생님은 자꾸만 더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기분이었단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안전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건강하고 바르게 가르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가서 30만 명 이상의 선생님들과 선생님의 목소리를 내고 오기도 했었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더 뜨겁게 외쳤어. 나를 위해, 너희를 위해. 나는 그저 가르치고 싶다고.
그런데 바뀌는 건 별로 없더라고. 너희도 알겠지만 무언가를 바꾼다는 게 참 어렵잖아? 그러다 보니 그냥 때려치울까,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
하지만 얘들아, 나는 너희를 보면서 힘을 얻었어. 물론 1년 동안 너희와 함께하면서 힘든 일도, 화나는 일도, 서운한 일도 많았겠지만 그런 건 하나도 생각이 안 날만큼 돌이켜 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들이 더 많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는데 너희는 나를 종종 놀라게 했단다. 너희와 함께한 1년 덕에 선생님은 내년에도 선생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용기를 얻었어. 선생님의 앞길에는 좌절과 실망만 있는 줄 알았는데 너희를 만나 조금이나마 희망을 보게 됐어. 그래서 정말 고마워.
선생님은 너희랑 함께하는 1년이 나름 즐거웠는데, 너희도 즐거웠니? 우리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섭섭했던 일, 화가 났던 일, 억울하고 미웠던 일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즐겁고 기쁜 기억들이 더 떠오르기를 바란다.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야. 공부 열심히 해라.
크크, 장난이고 공부 좀 못 해도 돼. 어떻게든 다 먹고살게 되어 있더라. 선생님은 그저 너희가 스스로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너무 빨리 크지 마. 어린아이답게 깔깔 웃으면서 실컷 뛰어놀고 가끔은 투정도 부리렴. 언젠가는 너희가 선생님보다도 키도, 마음도 커지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선생님을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 그래도 괜찮아. 선생님이 너희를 기억할게. 언젠가 너희가 문득 내가 떠올라서 나를 찾아온다면, 선생님은 웃으면서 너희를 맞이해 줄게.
늘 건강하고 행복해라. 이만 줄인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