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란다

by 단팥빵

빨간 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피부처럼 항상 끼고 다니는 검정 마스크, 휘황찬란하게 붕대로 감싼 다리. 우리 반 또또에 대한 옆 반 선생님의 첫인상은 ‘애가 조금 음침하게 생겼다’였다. 다행히 또또의 성격은 음침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끔은 과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말도 많아서 선생님이 설명할 때 자꾸 끼어들고, 슬슬 사춘기에 접어든 탓에 무시무시한 욕도 곧잘 하며 성에도 관심이 많고 반항심도 지극히 다분하다. 또또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한 적은 백 번은 족히 넘을 것이고, 암암리에 '진실의 방'이라 불리는 연구실에서 일대일 상담을 한 적은 열 번도 넘을 것이다.


또또의 어머니도 아이를 지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셔서 종종 상담 신청을 하곤 하신다. 특히 또또와 싸우고 난 후에. 며칠 전에는 아들이 사춘기인 것 같은데 얘기하다가 싸웠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움을 요청하셨다.


“어머니, 제가 보기에 또또는 또래보다 사춘기가 빨리 온 편이에요. 아닌 건 명확하게 아니라고 말해주시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뭔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어보세요. 그래도 또또는 은근히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서 계속 혼내기보다는 제재할 땐 제재하되, 잘한 행동에 대해 확실하게 칭찬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최소한 학교에서는요.”


라고 대답해 주었더니 한숨을 쉬며 웃으시는 거 아닌가. 솔직히 학교에서 교사가 지도하는 것과 가정에서 부모가 지도하는 것은 무척 다르고, 내 말이 이상적인 말로 들린다는 걸 안다. 나는 오은영 박사님이 아니라 고작 7개월 된 풋내기 교사였고. 어머니는 수용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셨다. 그러면 나한테 왜 물어보신 건지. 두 분이 알아서 원만한 합의 하시길 바랍니다.


또또는 어제도 나와 상담을 두 번이나 했다. 첫째는 친구에게 문자로 쌍욕을 해서. 둘째는 체격이 있는 편인 친구에게 ‘임산부’라고 놀려서. 첫 번째 상담은 친구를 불러서 서로 이야기하고 원만하게 해결했다. 그렇게 행동한 원인과 서로의 감정을 물어보고, 스스로 사과하고 다짐하게 했다. 그리고 또또만 남겨서 일대일로 네가 한 행동이 사이버폭력과 학교폭력에 해당하며 한 번 보낸 문자는 삭제해도 복구할 수 있다는, 상투적이고 최선인 지도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너를 믿는 만큼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너에게 애정이 있으니 이렇게 지도하는 거라고 선의의 거짓말도 했다. 또또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조금이라도 반성했으려나, 혹은 콧방귀를 뀌었으려나. 초임 교사인 나는 아이들의 잘못을 지도하는 게 어렵다. 혹시 나도 모르는 새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내가 말을 잘하고 있는 걸까, 말 한마디라도 실수했다가 뉴스에 나오는 당사자가 되는 건 아닐까.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상담은, 아,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 아이에게 임산부는 어떤 의미인 걸까? 그래서 물어봤다. 또또에게 임산부는 뚱뚱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건 바로잡아 주어야만 했다.


“또또야. 너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아니라며 말하는 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이었다.


“그러면 너도 엄마가 임신하셔서 낳으신 건데, 왜 임산부를 비하하는 말로 써?”


또또는 말이 없었다.


“임산부는 약자라서 배려해야 할 대상이지. 너도 어린이라서 약자잖아. 근데 누가 너를 무시하거나 비하하면 기분이 좋니?”


또또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눈높이에 맞춰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과연 이 아이가 이해했을지는 모르겠다. 나름 똑똑한 아이니까 이해했을 거라 믿는다.


이렇듯 또또를 지도하고 언성을 높인 날이 많다 보니 또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욕도 잘하고 부정적인 감정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이니까 나를 싫어하려나, 싶었다. 그런데 또또는 가끔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최근 마음을 전하는 글을 쓰는 국어 시간에 친구가 아니라 또또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 참 즐거웠다고, 조금 있으면 헤어져서 슬프다고, 자주 혼나서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의 말이 진심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속고 싶다. 아이들마저도 의심하고 싶지 않다. 혹시 10개의 마음 중에 단 1가지만 진심이었을지라도,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그 아이에게는 커다란 상처로 남을테니.


그리고 ‘나에게 학교란 00이다.’라는 주제 글쓰기에서는 학교가 좋다며, 공부해야 하는 건 조금 싫지만. 학교 다니는 게 신난다고 여느 때와 달리 정갈한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다른 친구들은 월요일이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실 월요일이 제일 좋다. 미술이 2시간이라 그나마 낭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였다. 또또는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미술 시간을 싫어하는 것처럼 반응하고, 항상 나에게 자신이 한 것을 보여주기 부끄러워했다. 그런 것 치고 어쩐지 예술적인 작품이 나온다 했더니, 이 자식, 사실은 미술을 누구보다 즐기고 있었다. 귀엽다, 귀여워. 키득거리면서 글을 쭉 읽어내리던 차에 마지막 줄을 보았다.


‘선생님, 글씨체 좋죠? 한 번 예쁘게 써 봤어요. ^v^’


아, 아이들은 참 투명하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차마 미워할 수 없다. 또또처럼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아이를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또또의 작고 까만 손을 타고 또박또박 적힌 글에 나도 볼펜을 고쳐 잡고 답글을 달아주었다.


‘선생님은 또또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진심으로 즐거워요.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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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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