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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민 Mar 04. 2024

멀미감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30913

 시나브로 이 시기가 되었다. 헛기침을 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고, 햇님보다 일찍 일어나는 계절. 반토막이 나버린 일조시간. 같은 양의 썬크림을 바르면서 아쉬운 느낌이 드는 계절. 라디에이터의 도움을 받아 빨래를 말려야 하는 계절.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영휘형과의 합욕을 마치고 보이는 소백산의 풍경

 작년 이맘의 나는 영주에 있었다. 이제는 작은형이라고 부르게 된, 영휘형과 첫 대면. 우리는 목욕탕에 갔다. 어렸을 때의 나는 형이 갖고 싶었다. 뒤늦게 맺게 된 형제 결의의 때. 근처에 이름모를 꽃나무가 보였다. 확실히 도원결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정도로 충분히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목욕탕 거울로 본 내겐 갈색의 머리칼이 보였다. 내 나이때의 엄마가 가진 머리칼의 색이었다. 나는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큰엄마들 사이에 자리한 엄마의 색이 좋았고, 엄마도 좋았다. 목욕을 마치고 바라본 내 발가락 모양에서도 엄마가 보였다.


 나는 내 새 가족이 좋았다. 엄마도 그럴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예전에 비해서 자주 웃는 모습이, 나를 대할 때 부담감을 한껏 덜어낸 아버지. 처음으로 만난 내 새로운 가족들. 모든 것이 좋았다.


 부모님과 전화를 하면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주로 받는다. 빨래 돌릴 때 세제 넣는걸 까먹어서 다시 돌린다거나, 술을 왕창 먹어서 하루 종일 골골댄다거나, 최근의 데이트한 친구에게 차였다던가, 요리를 생각 보다 많이 해서 같은 음식을 일주일내내 먹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접어두고 "별 일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영주에서의 생활이 퍽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예전처럼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작년 이후로 우리는 서로의 걱정보단 최근에 있었던 재미난 일들 위주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달리기를 입문시킨 책.

 작년의 그 여행이 당시에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환승 비행기를 놓친 것, 쌓인 일정들. 나는 대부분의 탈 것에 약한 편이고. 첫 일주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침대에 누워서 오랜만에 이 책을 읽었다. 하루키 아저씨의 수필은 소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자신은 살이 잘 찌는 체질이기에 끊임없이 운동을 해야했고, 덕분에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직 어떤 장점이 있는 것인지 찾지는 못했지만, 나는 '멀미감이 무조건 불행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몇 년은 지나야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좀 다녀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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