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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월 Dec 14. 2023

지하철 빌런과 회사 빌런

Job-念(잡념)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쿼트를 하거나 손잡이를 잡고 체조선수처럼 운동하고 있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불운하게도 그날 아침은 일명 '지하철 빌런'을 만난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아저씨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는 그 짧은 순간만 불쾌하면 됩니다. 밖에서 마주친다면 아마 무시하고 지나쳤을 테죠.


근데 불현듯 저 아저씨가 내 팀장이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아저씨도 경제활동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아저씨와 함께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일 할 때의 모습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무감각한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지하철에서 만난 빌런과 회사에서 만난 빌런은 어떤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왜 회사에는 빌런이 많은가


각 부서나 팀에는 빌런(Villain. 악당)이 한 명 이상씩 있습니다. 회사에서 내 주변에 빌런이 없다면 내가 빌런인지 의심해 보라는 유명한 말도 있는 걸 보면 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피할 수는 없나 봅니다. A 팀장이 힘들게 해 새로운 팀으로 이동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빌런인 B 대리를 만났고, B를 겪어보니 차라리 A는 양반이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저는 빌런 총량의 법칙을 믿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집단 내에서 악당처럼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일정한 비율로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 ‘빌런 총량의 법칙’입니다. 회사 밖에서는 이런 빌런을 마주치면 내 인간관계에서 멀리 두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거리적, 심리적으로 멀리 두고 그 사람과 얽히는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죠.


근데 회사에서는 내 마음대로 거리를 둘 수가 없습니다. 빌런과 같은 부서에서 만나거나 혹은 다른 부서라도 업무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관계로 만나게 됩니다. 거의 매일 이런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며 가끔은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빌런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매달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아가는 반대급부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외에 '피할 수 없는 빌런과의 만남'이 포함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빌런은 불쾌감과 분노, 황당함 등의 감정을 우리에게 주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만난 빌런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반면교사

반면교사(反面敎師) -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삼아 나의 가르침으로 삼는다’

'술만 마시면 입이 거칠어지는 부장. 팀원들의 업무성과를 본인 혼자만의 성과로 가로채는 팀장. 은근슬쩍 일을 떠넘기는 차장. 자기가 틀렸어도 절대 인정 안 하고 본인이 맞다고 우기는 대리. 몰래 일을 숨기고 쌓아두다가 결국 사고를 터트리는 주임.

오늘도 여러분들 덕분에 저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신과 같은 부장, 팀장, 차장, 동료가 되지 않겠다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면교사 혹은 타산지석이라는 표현을 회사 생활을 하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만난 빌런들과 일하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분노, 짜증, 배신감 등 여러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는 저렇게 회사생활하지 말아야겠다' 혹은 '저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아야겠다'라는 교훈을 얻기도 했습니다.


회사생활에 정답은 없겠지만, 이러한 빌런들의 오답과도 같은 언행을 직장생활의 길라잡이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일회성의 부정적 감정(가끔은 지나친 황당함으로 인한 즐거움)만을 우리에게 주고 떠나가는 지하철 빌런과 다르게 어쩌면 회사에서 만나는 빌런은 평생에 걸쳐 가슴에 새길만한 귀중한 교훈을 주는 존재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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