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소 Jul 18. 2024

명의

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다섯 번째 이야기)

입원을 하면 매일 오후 늦게 외래 진료가 끝난 담당 교수가 회진을 돌 거라고 생각했다. 달리 기댈 데가 없던 나는 교수님이 매일 보고 싶었다. 기대와 달리 담당 교수는 며칠에 한 번 볼 수 있었고 대신 나를 담당하는 주치의 선생님이 따로 계셨다. 

      

친절하게 소곤소곤 내 상태를 묻는 주치의라도 자주 볼 수 있으면 더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병원 생활이 어떻냐는 물음에 서울대 약대 그녀가 첫날 내 짐을 미리 다 본 것에 대해 살짝 불편함을 표시했다. 나도 똑같이 보호 병동(폐쇄 병동)에 입원한 처지라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면 또라이로 보일 것 같아 중얼거리듯 살짝 불편감을 표시했다.      


입원 첫날 짐 정리를 끝내고 주치의와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잠시 이야기를 하다 그녀는 나에게 태블릿 화면을 보여주었다.       


“폭력적인 성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폭력성이 보이지는 않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 나를 결박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에 주치의는 서명을 요청하였다.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좀 읽어보고 싶었으나 말로 간단히 설명만 하여 읽어 보고 싶다는 말도 못 하고 그냥 서명을 해버렸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서명을 안 해도 됐었나? 서명을 안 하면 퇴원조치됐으려나?’ 그런 것들이 궁금했으나, 그때 물어보지 못한 게 후회됐다. 입원 기간 동안 내가 한 서명으로 결박이 되거나 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서울대 약대 그녀는 엉덩이에 난 종기 때문에 담당 주치의를 통해 종기 질환과 별 상관없는 연고를 계속 처방해 달라고 했다. 엉덩이 종기 수술 걱정을 하던 그녀의 바람과 달리 피부과에서 간단한 처치만 하면 되니 퇴원 후 동네 피부과에 가볼 것을 권고받았음에도 종기와 무관한 약효를 가진 연고를 가끔씩 열심히 발라댔다.


그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녀의 담당 교수님이 오셨다. 당연히 연고 처방을 이야기했고 자신의 딸 때문에 퇴원을 하고 싶어 하셨다. 그러다 이야기는 자신의 학력으로 넘어갔고 원래는 고등학교 밖에 안 나왔었는데 약국 하는 남편 보기도 부끄러워 자신도 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하여 대학을 갔고 자식들은 자신의 학력을 모른다고 하셨다.      


서울대 약대 학력을 숨기는 부모가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서울대 약대를 나온 것을 자식이 모를 리는 더더욱 없다고 같은 병원 같은 과에 입원한 내 뇌는 말했다. 그녀가 진짜 졸업장을 보여준다 해도 이미 낙인찍어 놓은 뇌가 그녀의 학력을 쉽게 인정할 것 같지 않았다.       


입원 한 지 한 달이 넘은 그녀였으니 교수님은 아마도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들으셨을 것 같은데 친절하게도 “예, 예.” 추임새를 넣어가며 잘 들어주셨다.      


명의였다.     


<입원 셋째 날>

어제처럼 2-3번 깨기는 했는데 못 잔 것 같지는 않아요.

<입원 넷째 날>

어차피 2주 있으면 퇴원이에요. 처음 입원할 때 전자기기 안 되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노트북까지 가져왔는데 다 돌려보냈어요. 답답해요. 가려운 건 약 먹어서 괜찮아요.


작가의 이전글 나도 서울대 약대 나온 여자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