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네 번째 이야기)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보호병동에 입원한 후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일반병동과 달리 보호병동에서는 휴대폰이나 노트북과 같은 외부와의 스트레스 요인을 차단시켰다. 나쁘지 않았다. 다만, 우울증이 아닌 다른 질환으로 엄마가 입원 중인 줄 아는 아이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해 아이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병실 바로 앞 공중전화 한 대뿐이었다.
'입원 안내문에 무슨 카드를 구매해서 충전해 오라고 하더니 이래서 필요했구나...'
외래진료 후 아무런 설명 없이 간호사가 입원안내문 한 장만 달랑 줘서 우울증으로 가뜩이나 이해능력이 평소보다 느려진 나는 신용카드를 챙겼다. 신용카드는 반입이 안 되는 물건이었다. 내 신용은 손이 닿지 않는 어느 사물함에 보관되었다.
첫 경험은 서툴기 마련이다.
결국 충전해 온 카드가 없어서 공중전화도 이용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부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의료진을 통해 남편에게 부탁해 주말에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죄책감에 남편에게 부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에 절어 피곤해하는 남편을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이 짜증 낼지도 모른다는 미안함과 정신과에 입원한 죄의식이 들어 자꾸만 마음이 작아졌다. 다행히 남편 얼굴은 마주치지 않아도 되어서 덜 미안했다. 일반병동과 달리 보호병동은 보호자가 간식 등 필요한 물품을 가져오면 벨을 눌러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공중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일부러 힘을 조금 더 낸 목소리로 아이의 불안감을 약간이나마 달래줄 수 있었다. 공중전화로 휴대폰에 거는 전화는 요금이 쭉쭉 빠져나갔다. 휴대폰 무료통화만 사용하다가 전화요금이 쭉쭉 빠져나가는 걸 보니 돈이 아까웠다.
내가 입원하던 날, 멀미를 잘하는 아이가 시외버스를 타고 잘 내려갔는지 궁금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잘 내려갔다고 했다. 시외버스가 하차하는 도착지 근처 어딘가에 당연히 엄마가 차를 세워놓은 줄 알았는데 엄마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차지점에서 자가용으로 30분을 더 들어가야 친정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밤이었다.
"그럼, 집까지 어떻게 들어갔어?"
도시 외곽의 시골에 있는 친정집으로 가는 버스는 끊겼고 택시를 타고 가려면 왕복 요금을 준다 해도 태워줄까 말까 했다. 시외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앞에 있는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친절하게 집까지 잘 모셔다 주고 가셨단 말에 안도했다. 당연한 의무일수도 있지만 모르는 택시기사에게 참 고마웠다.
퇴원 후 친정집에 갔다가 웬 명함이 있기에 가까이 들어서 봤다.
"이거 뭐야 엄마?"
"아, 그거 너 입원하는 날 태워준 택시기사가 준 명함이다."
"근데 유퀴즈 출연자라고 돼있는데?"
"유키즌가 뭔가 뭐 거기에 나왔다고 하더라. 그게 뭔데?"
유재석과 조세호가 나오는 그 '유 퀴즈 온 더 블럭' 프로그램에서 손님을 위해 껌, 사탕등을 제공하는 명품택시기사로 출연하신 분이 내가 입원하는 날 엄마와 아이를 시골까지 친절히 태워다 주셨다.
'역시, 이런 분이니까 그렇게 친절히 친정집까지 태워주셨구나.'
고마움과 신기함이 교차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가끔 보지만 그 택시기사분이 나온 편은 보지 못했다. 찾아보려 하다가 우울한 내 처지가 마음이 아파 찾아보지 않았다.
택시 기사의 명함을 받은 엄마는 같은 종친이라며 반가워했고 택시기사의 이름을 통해 서열을 가리기도 하면서 재밌게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나와 달리 서글서글한 엄마와 택시기사의 대화 케미가 잘 맞았나 보다.
"택시기사분이 말도 재미나게 하고 참 친절하더라."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던 날, 그 장소 그 시간에, 나의 엄마와 아이가 유명한 TV프로그램에 나온 그 택시기사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 사실을 입원 당일날 알게 되었다면, 외부와 단절된 병동만 아니었다면, 복권을 사러 갔을 텐데...
('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 관련 글 : https://brunch.co.kr/@freeblue/30)
<입원 셋째 날>
[주치의 면담]
처음 입원할 때 전자기기 안 되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노트북까지 가져왔는데 다 돌려보냈어요. 답답해요. 가려운 건 약 먹어서 괜찮아요. 어제처럼 2-3번 깨기는 했는데 못 잔 것 같지는 않아요.
[간호기록]
11:17 간호사실 나와 전화카드 충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함. 보호자분에게 와서 충전해 달라고 전달해 드릴 수 있다니 어제 분명히 오전에 충전해 달라고 하고 맡겼는데 여기서 누락된 거 아니냐며 인계 듣지 않았냐고 함. 다음에 보호자가 언제 오냐니 병원에 와줄 사람도 없고 어차피 2주 있으면 퇴원이라고 함. 처음 입원할 때 전자기기 안 되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노트북까지 가져왔는데 다 돌려보냈다고 함. 답답하다고 하여 추후 교수님 오면 상의해 보자니 고개 끄덕임
13:03 전화카드 맡기며 보호자 오면 전달해 달라고 함
15:00 침상에 앉아 책 읽고 있음. 간호사가 병실 분들과 대화하는 중에도 미동도 없이 책에만 시선고정함. 인사 건네자 빤히 쳐다보다 "네?"라고 하여 인사한 거라니 "네"라고 함
18:30 침상에 앉아 책 읽고 있음. 저녁 식후약 투약함. 가려운 건 어떠시냐니 "약 먹어서 괜찮아요"라고 하여 이 시간에 드시면 다음날까지 불편한 거 없으시냐니 "네. 괜찮더라고요"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