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체념의 철학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늘 겸손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그렇게 단단히 각오를 다지더라도 죽음을 생각하면 늘 엄숙하고 불안이 내 목덜미를 서늘하게 스친다.
죽음은 생명이 빚진 고마운 존재
죽음이 마냥 비장하거나 두렵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단골로 다니는 전주의 수제 맥주 노매딕(Nomadic Brewing Co.)은 곳곳에 할로윈 해골 인형의 장식이 독특하다. 처음에는 으스스했다. 걸게 그림을 보면 조금 긴장감이 풀린다. 붉은 바탕의 카핏에는 그레잇풀 데드(Grateful Dead)라는 글씨 아래 기이한 웃음을 짓는 해골들이 그려져 있다.
거기서 죽음은 산자들과 즐거운 친구였다. 그레잇풀 데드는 고마운 죽음(영혼)이란 뜻인데 죽은 자의 영혼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산자에게 보답한다는 설화에서 나왔다고 한다.
중세 역사가 네덜란드의 하위징아(Joan Huizinga)는「중세의 가을」에서 무덤을 둘러싸고 해골이 유쾌하게 춤을 추는 당스 마카브르(Danse macabre, 죽음의 무도)를 보여준다. 왕, 귀족, 평민, 농부에서 거지까지 죽으면 모두 공평하게 해골이 된다. 살아있는 나날도 헛될 뿐이다. 그래도 지상의 감옥에서 해방된 영혼은 자유롭다. 죽은 자들의 노래와 춤은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고 영혼의 즐거움으로 위로받는 죽음의 미학이 담겨있다.
그레잇풀 데드의 그림에서 칼 폴라니(Karl Poalnyi)를 떠올렸던 것도 차원은 다르지만 태초 죽음이 없다면 생명도 잉태할 수 없었기에‘죽음은 생명이 빚진 고마운 존재’라는, 그의 죽음에 대한 깨달음(knowledge) 때문이었다. 칼 폴라니는 메멘토 모리를 되새긴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나서 죽음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최초의 타락이 오히려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뚜렷한 한계에 빚을 지고 창조되었으며 이런 사실을 부인하는 노력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삶의 의미를 파괴할 것이다.”
인간은 죽을 운명을 가졌기에 세상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계시처럼 받아들이고 생명의 유한성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삶의 소중한 의미를 더하게 된다.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수하는 체념의 철학
칼 폴라니의 명저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1944)도 죽음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유한한 삶에 고귀한 의미를 부여하는, 다시 말해 삶 밖으로(ex) 나가는(istence) 탈존(脫存)으로 익숙했던 자신의 삶과 낯설어지고 앞으로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놓고 성찰하는 실존(existence)철학이 뒷받침되어 있다. 인간이 밖으로(ex) 나간다는 탈존 행위는 현재를 뛰어넘어 자신을 부단히 극복하는 적극적이고도 자유로운 존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대한 전환」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와 있는‘(죽음에 대한) 체념(resignation)과 새로운 희망’은 칼 폴라니의 경제사상 전체를 압축한다. 체념은 수동적 의미의 자포자기가 아니라‘힘들더라도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감수’의 뜻이 들어있다. 죽음의 순간을 마지막까지 기록했던 치열한 인문학자 이어령도 「거대한 전환」의 마지막 단락을 ‘병실에서도 서재에서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resignation을 아예 한자의 뜻대로 쓴 것을 달게 받아들이는‘감수(甘受)’로 새긴다.
"(죽음의 한계는 물론 쓰디쓴 현실을 기꺼이 감수하고 새로운 용기를 다지는)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reality)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지상에서 유한한(bodily) 생명의 의미를 어떻게 쌓아올릴 것인가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영혼을 잃어버리면 육체적 죽음보다 한층 더 끔찍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진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resigned). (체념과 새로운 각오 속에서) 그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죽음은 시간적으로 언젠가 끝날지 모르는 생명의 끄트머리에 놓여있지 않다.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체념은 생명의 마지막 순서에 놓인 죽음이 아니라, 거꾸로 죽음이 앞장서서 생명을 이끌고, 죽음을 선취하여 삶에 의미와 역동성을 불어넣게 된다.
오늘도 전주 한옥마을 노매딕 맥주집 마당에서 깊은 맥주 한잔을 앞에 놓고 남고산성을 바라보니 구름이 하염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