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첫째 아이의 유치원 친구가 한국에 놀러 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라 조금은 설레면서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친구 엄마가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바로 경복궁이 떠올랐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궁궐을 거니는 경험, 그리고 그곳에서 첫째 아이가 직접 해설을 해주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이에게 이야기했더니, “낯선 외국인보다 아는 사람에게 해설하는 게 더 떨려”라며 준비해두었던 해설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긴장된 듯 카드의 글자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는 모습이 그동안 어른처럼 굴며 시크하게 반응했던 모습들은 온데간데 없이 귀엽고도 대견했다.
예약해둔 한복점에 도착하니 고운 색의 한복을 골라 입고, 머리까지 곱게 땋아주셨다. 한복을 입은 순간, 아이들은 어느새 조선시대 소녀가 된 듯 했다. 경복궁에 들어서니 그 모습 자체가 풍경에 녹아들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무더운 날씨 탓에 근정전, 사정전, 교태전, 경회루까지 발걸음은 빨라졌지만, 햇빛 속에 반짝이는 한복의 자락과 땀에 젖은 이마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아이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히 해설을 이어갔다. “일월오봉병이라고...”라며 친구와 엄마에게 설명하는 순간, 사춘기 특유의 어설픔 속에서도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는 모습이 어쩐지 듬직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와는 처음엔 조금 서먹했지만, 아이돌 스트레이키즈 이야기를 꺼내자 금세 눈빛이 반짝였다. 마치 오래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경복궁을 빠져나와 오후에는 스몹으로 향했다. 배구, 클라이밍, 짚라인, 양궁… 땀에 흠뻑 젖어가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경복궁의 고즈넉한 풍경과는 또 다른 활기였다.
그날 하루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고운 한복을 입고 땡볕 속 궁궐을 걸었던 시간, 긴장되지만 자연스럽게 해설을 해주는 첫째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온몸으로 뛰며 웃던 아이들의 모습까지. 그 모든 순간이 서로의 마음속에 작은 선물처럼 남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