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해설사 과정 중 공개수업이 있는 주였다. 손님들을 초대해 아이들이 직접 설명하고, 피드백을 받는 자리. 평소보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순간, 첫째 아이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너무 듣기 싫다는 듯이.
나는 순간,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결심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항상 아이보다 먼저 움직였다.
미리 준비시키고,
하지 않으면 다그치고,
스스로 해보기 전에 방향을 정해주던 나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져야 한다고 느꼈다. 아이를 믿어보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랐다.
"이번 주는 엄마가 아무 말 안 할 테니 네가 알아서 해야 할 것을 해놔.
다만 금요일엔 숙제가 모두 마무리되어야 하니 목요일 저녁쯤 같이 체크하자."
아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좋아, 내가 알아서 할게! 나 원래 알아서 잘하잖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묻어났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음악을 틀었다. 음악을 들으며 뭔가를 하는 듯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건 없었다.
답답했지만 참았다. 믿어보기로 한 거니까.
목요일. 약속한 날.
아이에게 미리 9시에 체크하겠다고 전해두었다.
밤 9시.
아이의 책상 앞에 같이 앉았다.
결과는 예상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거의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았다.
몇 줄 써놓은 메모가 전부. 아이의 말은 이랬다.
“자료 조사에 시간이 너무 걸렸어. 머릿속엔 다 있어.”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네가 자료조사에 시간 쏟았다는 건 이해해.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없으면, 얼마나 준비했는지 확인할 수 없어. 솔직하게 이렇게 된 이유가 뭐야?"
"너무 하기 싫었어."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신청한 거잖아."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그냥 쉽게 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힘들어. 그래도 하긴 할 거야. 지금도 하려고는 하고 있잖아."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럼 네가 알아서 해."
공개수업 당일.
예상치 못하게 해설 순서가 바뀌었다. 아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곧바로 앞에 나섰다.
풍부한 해설은 아니었지만, 전에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차분하게 풀어갔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조금만 더 준비했더라면, 더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엔 그런 아쉬움보다 뿌듯함이 먼저였다.
“다음엔 더 준비해야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스로 꽤 만족한 듯 보였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수업 준비가 시작됐다.
운현궁과 북촌. 답사만 이틀.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 인물사까지 알아야 하는 코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 거의 없었고, 아이는 “이 정도면 됐지”라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나는 "조금만 더 하면 정말 잘할 텐데…" 그 마음을 꾹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해. 태도에서 모든 게 비롯돼.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엄마는 여기서 그만하고 싶어. 주말마다 데려다주고, 수업 끝나고 답사 다니고, 숙제 체크하고, 그러다 기분 상하고, 이런 게 무한반복이야. 엄마도 이제 힘들어."
아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말했다.
"거의 다 했는데, 지금 관두면 아깝잖아."
"너랑 이렇게 계속 부딪히는 것보단 나아. 엄마는 더 이상 이렇게 가고 싶지 않아. 이러려고 서포트하겠다고 한 게 아니야. 이런 식으로 하기 싫다고 미루면서 했다고 하고, 그런 걸 배울 거면 아까워도 지금 안 하는 게 나아. 생각해 보고 알려줘."
아이가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을 끝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이를 협박하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하면 그만둘 거야."
"엄마는 더 이상 못 하겠어."
말은 걱정과 피로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결국은 아이를 몰아붙이는 말이었다.
나는 안다. 첫째 아이가 이 과정을 끝까지 마치고 싶어 한다는 걸. 스스로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엄마가 그 마음을, 믿고 기다려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조바심이 나고, 속이 타고, 내 방식대로 끌어주고 싶은 마음이 끝없이 올라온다.
그래서 결국, 믿는다 말해놓고 기다리지 못하고 있었다.
‘믿는다’는 말은, 어쩌면 그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기다림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