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인텐시브 과정. 이 문화유산해설사 프로그램이 언제 끝날까,
매일매일 과제가 있고, 아이가 혼자 하기에 좀 벅찬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어에 익숙하거나, 역사적 배경 지식이 좀 있다면
조금은 수월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수업을 듣고, 리서치하고, 자료 정리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해설카드를 만들고,
해설을 연습하고, 시험도 세 번이나 치러야 했다.
놀랍게도 내가 박사과정 준비하던 그 과정과 너무 닮아 있었다.
수업, 지필고사, 계획안, 논문 리서치, 논문 쓰기, 구술시험, 논문심사까지.
아이는 지금 '공부하는 법' 그 자체를 몸으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그치지만 않는다면.
솔직히, 나는 이 과정이 힘들어서 아이가 예민하다고만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적응은 다 끝났다고, 나 혼자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아직도 ‘적응 중’이라는 과정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오는 그 간극.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아이에겐 그 간극이 굉장히 컸던 듯 했다.
처음엔 괜찮은 듯했지만 두세 달쯤 지나면서부터
교과서가 어렵다고,
영어는 자신 있는 과목이었는데, 수동태, 형용사, 부사, B동사 같은
낯선 문법 용어들이 벽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영어시간인데 왜 한국어 시간같냐고,
수학은 진도가 너무 빠르고,
"엄마, 나도 선행했어야 했던 걸까?"
그런 말도 자주 하게 됐다.
그럴수록 나는 또 조급해졌다.
어느 날, 수학 시험을 앞두고 함께 문제를 풀어보자고 했는데
문제집을 들고 나오는 첫째를 보던 둘째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엄마가 안 봐줘도 지난번 수학시험에서 하나밖에 안 틀렸는데,
왜 언니는 더 큰데 엄마가 봐줘?"
그 말에 첫째가 갑자기 폭발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랑 같아 보여?! 더하기 빼기 하잖아, 너는!"
그러더니 문을 꽝 닫고 혼자 하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가 차분히 이야기해보려 했지만
결국 또, 나는 내 방식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문제를 풀어보면서 모르는 걸 내가 설명해주는 게 더 빠른 방법이야.
네가 하려는 건 맞아. 근데 그건 여유 있을 때 얘기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엄마는 맨날 내가 하려는 건 다 안 된대. 다 틀렸대."
그러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화살은 둘째에게로 향했다.
"쟤 말하는 것도 싫고, 웃는 소리도 싫어. 꼴도 보기싫어. 그냥 다 짜증 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첫째가 둘째에게 했던 말투, 그게 바로 내가 첫째에게 해온 말투였다는 걸.
첫째 아이의 모습이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있었다.
사춘기의 예민함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조급했고,
내가 몰아붙였고,
내 방식이 옳다고 믿었던
그게 문제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다.
멈춰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지켜봐야 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아이를, 그리고 나를 함께 다독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