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서체학 연구 - 박병천 저
2018.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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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책이다. 한글 서체 학연 구라는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크고 두껍고 어렵다. 한 번에 읽어 내려갈 엄두조차 나지 않아 궁금한 일부분을 먼저 읽어보았다. 이 글은 한글 서체학 연구 중 제 1부 3장 훈민정음 한글 서체와 수정안에 대한 글이다.
서체학이 무엇일까. 한글 서체는 익숙하지만 서체학은 낯설다. 1장을 펼쳐보면 한글 서체의 개념과 분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서체의 개념은 굉장히 단편적이고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민정음 한글 서체와 수정안이라. 목차를 보고 이 부분이 제일 궁금했다. 훈민정음해례본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자료를 통해 훈민정음해례본에 담긴 한글 서체의 형태는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형태가 해례본의 글자인지. 조선어학회에서 1946년에 보급한 1차 영인본의 글자인지. 한글학회에서 1998년에 간행한 2차 영인본인지 모르겠다. 무슨 차이가 있고 무엇이 복원되었고 무엇이 수정되었을까.
유일본으로 인정되고 있는 훈민정음해례본은 현재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창제 후 500여 년간 소장처가 밝혀지지 않다가 1940년 경북지방에서 책의 앞부분 2장 4쪽이 낙질된 채 처음 발견되어 졸속 보완하였다. 그 해례본의 복원 및 부분 수정에 국어학자들이 참여하였지만 한글 자형에 대한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례본과 다르게 여러 오류사항을 담고 있는 영인본이 보급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정말 문제가 될 정도일까. 궁금해서 구글로 훈민정음해례본에 대한 이미지들을 찾아보았다. 해례본의 글자는 간송미술관 소장본을 찾아보면 본래 형태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죽 둘러보니 구분이 어렵지 않다. 낡은 것은 해례본. 깨끗한 것은 영인본. 이 정도로만 구분해도 둘 사이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 차이를 몰랐을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영인본에 나타나는 한글 자형은 균일하지가 않다.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해례본에서는 대칭으로 균일하게 나타나는 한글 자형이 영인본에서는 삐뚤거나 비대칭에 수직 수평이 어긋나 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저 다 비슷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르다. 자모음이 연결되어 다른 글자로 읽히는 부분도 있고 방점이 획에 연결되어 버린 부분도 있다. 나 또한 이전에 훈민정음 한글 자형을 살펴볼 때는 그저 옛글자이니 삐뚤거나 비대칭으로 보여도 그게 오류라는 것을 몰랐다. 본래 그렇게 생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정작 해례본의 한글 자형은 굉장히 균일하고 훨씬 깔끔하다. 오히려 반대로 이게 최근에 더 보기 좋게 다듬어서 만들어진 것인가? 싶기도 하다.
고서에 나타난 한글 자형들은 보기 좋다.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쓰거나 조각한 정성스러운 흔적과 따스함이 담겨있다. 조형미를 떠나서 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다. 서체는 시대를 따라 변한다. 1443년 한글이 창제된 이후 2018년 현재까지 수많은 자형들이 자료로 남아있고 또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옛 활자를 되살리는 의미와 가치가 있는 작업들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 나는 한글을 그리고 또 서체를 제작하면서 늘 그래픽적인 새로운 표현. 조금 더 새로워 보이는 글자의 형태만 고민해왔다. 한글은 해례본에서 체계가 완성되었고 그 구조와 형태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판본체와 궁서체 그리고 명조체와 고딕체를 비교하면 그 형태는 분명 차이가 있다. 과연 한글의 형태에 새로울 게 있을까. 새롭다는 것이 그만한 가치나 의미가 있을까.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후대에 드러나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형의 변화가 아닐까.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묵직하다. 한글의 창제 후 쓰인 서체들의 형태뿐만 아니라 다각도로 연구 분석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으니 쉽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물론 디자이너와 학자는 다르지만 조금 더 제대로 한글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익히고 또 다른 책을 펼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