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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Feb 04. 2021

제스타입 작업일지 #35

2020 - - - 2021

        2020년 어느 날.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초심은 바래가고 관성에 따라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마주하였는지,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이제 와서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해가 지날수록 성장한 것은 틀림없는데, 알맹이가 점점 말라 가는 느낌이랄까. 일처리는 비교적 능숙하지만, 초심을 생각하면 작업을 마주하는 패기가 많이 쇠약해졌다.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리 나태해졌는지, 스스로를 탓하고 채찍질하며 자신을 바로 잡고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은 일도 있기 마련, 늘 좋은 일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관계는 늘 관점에 따라 상대적이고, 어쩌면 작업보다 사람이 훨씬 더 어렵다. 일은 일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이게 도통 분리가 되지 않는, 아니 애초에 분리가 되지 않는 것인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아닐까. 생각처럼 쉽지 않고 뇌 속을 부유하며 두통을 유발하는 가시 마냥 불편하다. 작업의 결과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 즐겁게 작업을 이어가는 클라이언트가 있는가 하면, 도통 서로 통하지 않아 결과물이 산으로 가버리는, 그래서 결국 불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두고 서로가 불편한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탓한다. 누굴 탓할 수 있을까.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에서 글자 그리고 표현, 한글 레터링 수업을 진행한 지 4년이 되었다. 오늘도 7시부터 10시까지 늦은 시간임에도 찾아와 주신 수강생 분들에게 글자 조형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강의하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잔뜩 떠들다가도 글자를 잘 그리고 있는 수강생 분들을 볼 때면, 뿌듯하기도 하고, 자극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이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고, 정리하고, 이야기하면서 되새기고, 더 나은 것을 제시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리고, 다듬고, 또 그린다. 정답이 없을지라도,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헤매고 있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꽤 여유롭다. 일을 하자면 얼마든지 더 바쁘게 지낼 수도 있겠지만, 작년에 정신없이 쌓은 것들을, 단단하게 다질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조금은 느긋하게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들이 있어 외주작업을 줄이고 차분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유에 젖어 있다보면 문득 이렇게 여유 부려도 되는 것일까, 이러다 누가 내 밥그릇을 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걱정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런 일이 없던 시절, 불과 몇 년 전을 생각하면 그냥 갈 길 가자라는 생각에 그리 불안하지는 않다. 오랜만에 글을 쓰자니, 영 익숙지 않고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횡설수설하고 있다. 작업일지니 작업에 대해서 기록해야 하는데, 작업에 대해서... 기록을 멈추고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일은 없지만, 작업은 태산이다.


- - -


        2021년, 해가 바뀌고 또 한 달이 흘렀다.


        오랜만에 작업을 멈추고, (아직 해야 할 작업은 산더미이지만) 작업일지를 펼쳤다. 오늘은 왠지 글을 쓰고 싶달까나. 레터링 작업과 타입디자인 작업은 어느덧 능숙하다. 그에 비해 글쓰기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아 섣불리 손이 가지 않았다. 단어를 선택하여 문장을 이어가며, 문단을 구성하고 내용을 엮어가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 것인지 생각 같지 않다. 집필 중인 원고도 마무리해야 하고 온라인 클래스의 스크립트와 앞으로 만들어갈 콘텐츠 기획도 해야 하니 글과 조금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 차분하게 손목을 풀고 자판 위에 손가락을 풀어본다. 


         오프라인 클래스 5년 차에 온라인 클래스 1년 차라, 처음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할 때는 잔뜩 긴장해서 횡설수설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내 지식을 펼치고 전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지식이 그리 깊거나 폭넓지 않아 계속해서 채우고 또 넓혀가고 있다. 책을 쓰는 것은 오래전부터 바라고 또 시도해왔는데 말로 풀어내는 클래스와 글로 풀어내는 책은 전혀 다르다. 오랜 시간 말로만 떠들다 보니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필요한 논리와 근거는 그때그때 덧붙이거나 잊어버리기도 한다. 글은 정리가 필요하다. 온라인 클래스에서 작업에 대한 간단한 피드백을 할 때에도 글을 풀어놓고 문장의 순서를 다듬는 경우가 잦을 정도다. 물론 어휘가 그리 뛰어나지도 않으니 괜히 글이 가벼워 보인다. 누가 쉽게 쓰는 것이 좋은 거라고 그랬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스티븐 킹의 창작 노트였나? 애초에 그 글쓰기와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2020년은 다른 무엇보다 타입디자인 작업에 집중했다. 사실 그보다 휴식에 더 집중했지만, 작업 의뢰가 많지도 않았고 적당히 시간을 흘려보내며 느긋하게 활자를 그렸다. 흑운과 흑단 중명조, 그리고 올해는 흑단 태명조와 초특태명조를 작업해야 한다. 노트폴리오와 새로운 온라인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고, 미진사와 글자 조형을 주제로 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이론서인지 실습서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이 책의 원고를 기필코 5월까지 완료해야만 한다. 벌써 1년을 질질 끌며 제대로 진행을 못했다. (내 글재주를 탓할 수밖에)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로 진행한 흑단 본문 활자 3종도 올해 안으로 끝내야 하고, 흑운은 라틴 대문자를 수정해서 판매를 시작해볼 생각이다. 


         온라인 클래스를 하다 보니 영상 콘텐츠에 흥미가 생겨 유튜브도 기획하고 있다. 아무래도 책보다는 가볍고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의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하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나는 늘 될 때까지 하는 편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고대하던 만 명을 넘어섰다. 이전에 페이스북을 한창 활용할 때에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워 3000명이 넘어서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었는데, 이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만 명을 넘어섰으니 유튜브를 시작할 차례다. 생각해둔 콘텐츠들은 여럿 있는데 기획을 하나하나 다듬어가면서 준비하고 있다.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일을 만드는 수밖에, 생존을 위해 오늘도 머리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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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부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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