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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an 26. 2024

행복은 없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미성년자였던 나의 모습을 회상해 보면 나는 그다지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행복해지는 방법조차 모르는그저 어린아이였다. 나의 본연의 감정에 충실했다. 나는 정말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남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 걸어줄 때 나는 타인의 뒤에 숨어 그가 나를 대변해 주길 원했고, 내가 좋은 사람들이라 느꼈던 이들과 함께 어울리려 노력했지만 내가 그들에게 곁을 내어줄 새도 없이 그들은 나에게 순식간에 등을 돌리곤 했다.


나는 서로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들이 눈앞에서는 달콤한 언어로 온갖 대화를 속삭이면서도, 사실 서로의 등에 칼을 꽂았던 광경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이를 자주 목격하다 보니, 애정과 사랑에 관한 나의 가치관 형성에도 암묵적인 결함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나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어린 인간이었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타인에 의 한 것이라고 여겼던 시절을 보냈다.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다. 그리고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에만 급급해 나 자 신을 들여다보지 못한 탓이 컸는지 나는 사랑과 행복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행복할 수 없었고, 급기야 스스로를 상처 많은 아이로 치부했다.


나는 나를 상처 많은 사람으로 명명했다. 상처투성이. 나는 그냥 사랑받고, 사랑하고, 같이 행복하고 싶은 사람인데, 내가 모난 탓에 사랑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였던 시간이 길었다 보니, 이어지는 삶에 대한 사고회로. 나는 삶이 불행의 연속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채워지지 못한 사랑의 공백은 나를 부정적인 생각의 끝으로 내몰았다.


사랑과 애정이 넘쳐도 모자랄 이 세상이라 생각했으나,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가장 사랑해 줄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결코 알 수 없었다. 자기 객관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미성숙한 시기에 놓인 스스로를 돌보고 아끼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타인에게 의존할 뿐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 나의 곁에는 결국 불행과 상처라는 내가 만든, 나를 갉아먹는 형체만 남아있게 된 것이었다.


집에 와 혼자 우는 날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누군가가 나에게 싫어하는 내색이라도 보일까 나는 모두에게 잘해주는,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착한 아이로 보이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다.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고, 호의와 선의를 베풀었다. 그 누구라도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 이유 없이 그저 나 자신이라는 이유로 미움받는 일이 나에겐 감당할 수 없는 상처였기도 했기에 미움받을 때마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내가 싫었다.


미움받는 일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미움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 정말 최선을, 온 힘을 다했다. 다행히도 내가 노력한 만큼 나는 그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었다.


타인에게 착한 아이로 인식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쉬웠고, 이 방법 이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나를 살 수 있게 하는 아주 간단하고도 편리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반 친구들 모두에게 착한 아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 사이에서 내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기도 했다.


청소년으로 살았던 시절 동안 나는 이 전략으로 적어도 학교에서 미움받는 아이로 지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과 함께 행복의 형체도 멀어져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유 없는 미움을 받지 않아서 온전한 행복을 누렸다고, 앞으로도 행복은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이 된 채로 나의 청소년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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