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 Jan 26. 2024

사랑으로 전진!

사랑한다=껴안는다

내가 느낀 사랑의 형태는 서로를 껴안는 형태였다. 보통 우리는 애정표현의 흔한 방식으로 포옹을 하곤 하는데, 사랑은 포옹을 할 때 느껴지는 상대의 온기와 같아서, 나에게 사랑은 그 사람을 껴안는 형태로 다가왔다. 서로를 안아주는 행위는 사랑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아주 가벼운 포옹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안아준다는 행위에는 따뜻함이 서려 있다. 그 따뜻함으로 우리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포옹이라는 가시적인 행위 이외에도 나는 사랑을 그 사람의 마음을 껴안는 행위에 비유한다.


진짜 사랑은 상대를 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나 자신을 아끼듯 그 사람을 아껴주는 일, 그 사람이 걷는 길을옆에서 따라 걷는 일, 그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헤아려주는 일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행동들은 상대의 마음을 껴안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할 일들이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해 본 적 없었던 시절에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길 원했다.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함께 행복할 때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나에게 몇 배로 더 큰 행복감을 부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마음과 같을 확률은 현저히 떨어지곤 했다. 내가 껴안고 싶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마음을 표현하기엔 너무 소극적이었던 탓에 그저 짝사랑으로 끝나는 일이 다분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사람을 뒤에 숨어 좋아하는 일만을 반복하다, 시간이 흘러 운 좋게 나도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연애는 평탄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슬프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연애가 평탄하지 않았던 이유를 연애를 끝마치고 나서도 절대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아마 내가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지 못했던 이유에서 기인하였을 것이다.


이유를 알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옆에서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 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우리의 사랑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던 이유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으로 나름 그 사람을 껴안고 사랑했다고 해도 상대는 이를 최악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사랑에 관한 딜레마에 놓이기 시작했다. 그냥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그 사람을 껴안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진짜 사랑이 아니었음에 적잖이 당황하고 충격이 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국 사랑하는 감정만 가지고는 원활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것이다.


나는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사랑에 관한 나의 가치관도 이리저리 흩어져 어느 순간 내가 상대방을 사랑했던 나름의 방식은 사라져 없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랑을 오래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주관만 뚜렷해서는 길고 오랜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여러 가지 갈래의 사랑의 방식들을 찾는 중 나는 사랑에도 이상과 현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나의 사랑에 대한 무너진 가치관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분명 누군가는 그냥 단순히 사랑만 하면 된 것이지 무슨 이상과 현실이 사랑에도 존재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사랑에 여러 번 실패한 나는 사랑에도 이상과 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남들 다 연애하고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뜨겁게 사랑하길래 사랑 참 쉽겠거니, 나도 저런 사랑을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던 미숙하고 어리숙했던 나도, 이제는 사랑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일임을 비로소사랑했던 경험 덕분에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조금은 억울하다. 이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 그저 감정만 가지고 사랑하고 싶을 때가 참 많다. 그러나 내가 상대를 온전히 위하고 그 사람과 오래 함께하고 싶다면 사랑할 때 나의 이성과 감성 사이의 완급조절은 꼭 필요하다.


사랑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서로 평생을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그저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본연의 감정에만 충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랑의 모양은 행복의 모양과 같아서, 쉽게 잡히기도 하고, 또 쉽게 놓치기도 한다. 그러니 사랑을 아주 소중하게, 어린아이 달래듯이 여기며 아낄 수 있을 때 사랑은 여전히 떠나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은 없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