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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Feb 17. 2024

유즉시무 무즉시유

아무래도 더 이상 안 되겠다. 자야겠다.

오늘은 저녁 상에 시원한 굴국을 끓여서 차렸다. 표고와 다시마로 푹 끓여서 채수를 내고 채 썬 무와 빻은 마늘, 청양고추를 넣고 굴 한 줌 넣었더니 얼큰하고 시원한 굴국이 정말 맛있었다. 간장으로 간을 하고 부추가 없어서 셀러리를 썰어서 넣었다. 셀러리 향기가 굴하고도 잘 어울렸다. 그 사이에 밑반찬으로 콩나물과 시금치나물을 뚝딱 했다. 배춧잎과 고추장, 콩나물, 시금치, 김, 굴국밥으로 건강한 저녁 밥상이 차려졌다. 

"으허~얼큰하다!" 남편과 나는 굴국을 떠먹을 때마다 굴국의 시원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일은 남은 굴이랑 매생이를 넣고 끓여서 먹자고!" 남편에게 내일은 아침상에는 한 줌 남은 굴로 매생이 굴국을 끓여서 차려주겠다고 예고를 했다. 남편과 나는 연신 "으허~"소리를 내며 국그릇과 밥그릇을 뚝딱 다 비웠다. 설거지는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빨래를 개키러 거실 가운데 쌓여있는 빨래더미 앞에 앉았다.  


주말은 쌓인 빨래들을 돌리고 개키는 날이다. 아이 옷이 대부분이고 양말은 매일 빨아야 하기에 양말이 참 많다. '빨래 앞에만 앉으면 왜 이렇게 마음이 게을러지는 것일까?' 갑자기 그 노래의 음률이 떠올라서 입가에 맴돈다. "그대~앞에만 서면~나는 왜 작아지는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빨래를 개켰다. 빨래 앞에만 앉으면 게을러지고 하기 싫은 마음을 노래를 부르며 극복해 보았다. 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다 개켰다. 개킨 빨래를 제자리에 넣어야 하는데 글을 쓰는 게 더 중한지 빨래를 집어넣는 게 중한지 코카콜라 게임을 했다. 글을 쓰는 게 더 중한 일이라 제자리에 집어넣는 일은 내일 아침에 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 너무 피곤해서 눈이 감긴다. 아이를 9시에 재우다 보니 나도 오후 9시가 되면 눈에 추가 달린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남편은 벌써 잠들었다. 우리 가족은 아이의 생체리듬에 맞춰서 지내다 보니 모두 9시에 잠자리에 드는 생체리듬이 만들어졌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거실까지 울려 퍼진다.

아이도 나도 남편도 누우면 5분 안에 잠든다. 잠 잘 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가풍이다. 

잠을 잘 자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밤에 잠을 자는 동안 머릿속의 정보들도 정리가 되고 장기들도 쉬며 치유와 성장이 일어난다. 


밤에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귀도 닫는다. 잠을 자는 동안 무의 세계로 갔다가 다시 아침이 밝으면 깨어나서 온갖 일을 보고 듣고 말하는 유의 세계가 결국 하나로 둥근 바퀴 굴러가듯 굴러가며 인생이 흘러간다.


유즉시무

무즉시유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잠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신심명 68번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더 이상 안 되겠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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