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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Apr 03. 2024

잘 먹었습니다


이봐요! 같이 타요! 기다려 줘 고맙수다. 아, 9층 새댁이고만. 오랜만이시. 8층 좀 눌러 줘요. 애들 학교 데려다 줬나 보지? 나는 쓰레기 좀 내다 버리느라. 그래요. 올라가요. 아, 저기 새댁, 아침 자셨어? 내가 요새 통 입맛이 없어서 말이야. 혼자 먹으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밥이나 같이 먹을라우? 마침 꽃게를 좀 무쳐 봤는데 괜찮더라고. 요새 얘네가 알배기잖어. 아이고, 민폐는 무슨.

 


들어와요. 우리 이러고 살아. 아유, 깔끔하지도 않아. 해 바뀌니까 살림살이가 신물이 나서리. 다 늙어서 이사하는 것도 귀찮고. 인테리어 좀 새로 했어. 아, 우리 아저씨? 공 치러 갔잖아. 친구들이랑 3박 4일로다가 제주도로 갔어. 에구, 그놈의 골프 지긋지긋해. 아이고, 앉아요, 앉아. 아무것도 할 것 없어. 국 데우고 반찬만 놓으면 돼. 정 그러면 식탁만 좀 닦아 줄라? 찬이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다. 젊은 사람 입맛이라. 이거 배추 된장국, 소고기 넣고 끓인 거야. 우리는 고기, 장흥 가서 직접 사 온다우. 새댁도 음식 잘하지? 어시장 갔더니 꽃게가 진짜 좋더라. 낙지볶음도 먹어 봐. 청양고추 많이 넣고 볶았어. 우리집 양반이 매운 거 좋아해서 했는데 집에 붙어 있지도 않는 영감탱이 생각해서 뭐 할 거야. 우리나 먹자고. 이거 감태라고 아나? 오호, 섬 출신이었어? 몰랐네. 뭍으로 나왔으니 출세했고만. 김치 먹을 만해? 내가 다 잘하는데 아파트에서 김치 담기가 영 성가셔서 말이야. 우리 동서가 올려 보내 주거든. 그런데 요즘 이 여편네가 성의가 없어졌어. 내가 재료값에 수고비에 돈을 얼마나 많이 주는데. 


 
맞다, 아들내미가 올해 고3인가? 어머나, 어머나 대학 갔어? 어디루? 아, 거기 음대. 없는 부모한테 효도했네. 학비 싸고 집 가까우니 얼마나 좋아. 새댁은 참말로 좋겠다. 아들이 음악하니 말이야. 나는 남자가 악기 다루면 그렇게 멋지더라! 그런데 거기 나와서 뭐 먹고 살려나? 진로가 좀 걱정이긴 하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우리 손자랑 한동갑이네. 우리 애 한 번 봤지? 키 멀대같이 큰 놈. 얼굴 하얘 가지고. 갸가 우리 집 장손이라우. 어어, 대학 갔지. 근데 애가 지 엄마 닮아서 머리가 나빠. 의대는 써 보지도 못했대요. 겨우 서울로 갔더라고. 어디냐고? 서울대. 우리 아들 저 아래 사거리에서 이비인후과 하잖아. 알지? 자기 병원 어디로 다녀? 딴 데 가지 말고 우리 아들한테 진찰 받어. 알았지? 어여 들어요.
 


왜? 더 먹지 않고. 어디 아파? 아, 잠을 못 잤구나. 새댁도 늙나 보다. 하긴 여적 '새댁'이라 하기는 거시기하지. 호호호. 몇 살이나 먹었어? 에구. 관리 좀 혀. 저기 한번 누워 봐요. 혈액 순환이 잘돼야 혈색도 도는 거야. 내가 자랑 같은 건 참 안 하는 사람인데 이건 좀 해야겠네. 저 안마기 '이정재'가 선전하는 거 봤지? 우리 딸이 보냈더라고. 애 낳더니만 엄마 생각을 어찌나 하는지. 새댁이랑 몇 살 차이 안 나. 그런데 시집을 이제야 갔지 뭐야. 엊그제 갓난이 하나 낳았어. 새댁은 한둘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키워 냈어? 진짜 대단하다. 아이고, 우리 딸은 아줌마를 둘씩이나 두고도 힘들다고 맨날 죽는소리야. 그렇지 애기 키우기가 어디 쉽나. 지도 겪어 봐야지. 곱게만 자라서 말이야. 짠해 죽겠어.
 


벌써 일어나려고? 그려, 가서 좀 자요. 피곤해 뵌다. 좀 싸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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