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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Apr 17. 2024

그냥 술을 마셔

계명




왜 술 안 마셔요? 저 교회 다녀요. 예수님 믿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부모 공경은 안 하네요. 도둑질에 간음도 저지르고. 
 
나는 일찍이 술을 먹어 봤다. 제주로 수학여행 갔다, 토요일 저녁에 돌아왔는데 어른들껜 다음 날 도착이라고 거짓말했다. 미녀는 아니고 그냥 삼총사가 있었다. 마침 한 사람 집이 비었고 우리는 입시 스트레스로 힘들었다. 주동자는 없다.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성실한 신자다. 일요일에 단 한 번도 예배에 빠지지 않았고 말씀을 진지하게 들었다. 술 좀 마셨다고 지옥 갈 건 아니지만 무지 죄악시하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취하는 걸 하나님은 아주 싫어한다고 배웠다. 할머니가 우리 아빠는 술과 화투를 좋아해서 일찍 죽었다고 한다. 뭔 좋은 일이라고 날마다 상기시켰다. '니네 아빠처럼 그렇게 했다가는 손을 잘라 버린다'고 했다. 꼭 예수 잘 믿는 남자한테 시집가라는 말과 함께. 무섭다. 온전한 손으로 오래 살고 싶다. 그런데 술을 먹어 보고 싶은 욕망이 손이 잘려 나갈 공포를 이겼다. 하나님 생각은 전혀 나지도, 하지도 않았다.
 


소주가 싸다. 돈이 부족해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걸로 세 병 샀다. 사이좋게 너 한 잔 나 한 잔 마셨다. 도대체 이 소독약 같은 걸 왜 먹나 하는 마음은 곧 사라졌다. 기분이 너무 좋잖아. 여기가 꽃밭인지 구름과 함께 하늘인지 모르겠다. 취했다. 옥이는 울었고 은하는 일어서서 지오디 노래를 불렀다. 나는 헛소릴 끝없이 했다. 은하가 시끄럽다며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자기 노래를 들으라고 했다. 짜장면이 싫다는 누구의 어머니 얘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갈증이 나 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정신이 든다. 예배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랬는데. 술 마신 것과 주일을 안 지킨 걸 달아 보니 예배에 빠진 게 더 무거운 것 같다. 술 냄새를 지우려고 오래오래 씻었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예배당에 갔다. 불안한 눈빛과 달아오른 얼굴을 교인들이 알아볼 것 같다. 남의 교회로 갔다. 낯선 예배당 맨 뒤에 앉아 회개했다. '하나님, 다시는 술 먹지 않을 테니 제 손을 지켜 주세요.'

작고 통통한 손은 아직 내 몸이다. 술은 안 마신다. 하지만 여러 우상을 섬긴다. 돈, 사람, 사랑, 내 열심 같은 것들. 주일엔 꼭 예배당에 있지만 몸만 두고 정신은 천지사방을 다닌다. 부모 공경은, 글쎄. 그대로 당할까 봐 노력 중이다. 너무 미워서 여러 사람을 죽였다. 유부녀지만 음욕을 품어 봤고 남의 것을 탐내 도둑질도 했다. 거짓말은 전공 분야지. 죄가 너무 많군. 그냥 술을 먹고 계명을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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