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 코스프레

비평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by 예하

당신들을 '비평가'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그게 당신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훑고, 부족한 점을 집어내고, 틀린 것들을 교정하려 드는. 그 모든 행위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믿으면서.


나도 한때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비평과 비난은 다르다.


비평은 대상을 더 나아지게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근거가 있으며,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전달된다. 무엇보다 비평은 사람이 아니라 행위를 향한다.


비난은 다르다. 비난은 상대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작게 만들려는 데서 온다. 그것은 막연하고, 감정적이며, 종종 내가 아닌 당신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난은 행위가 아니라 사람을 겨냥한다.


당신들이 내게 건넨 것은 어느 쪽이었을까.


진짜 비평가는 상대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더 단단하게 세우려 한다.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평가가 아니라 그냥 비평가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이다.


예전의 나는 그 차이를 몰랐다.


당신들의 말이 날카롭게 꽂힐 때마다, 나는 그 날카로움을 진실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아픈 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고, 지적을 받는 건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더 잘하려 했고, 더 조심하려 했고, 당신들의 다음 말이 부드러워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당신들의 말은 내가 나아질수록 더 날카로워졌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나는 상대의 평가에 나를 맞추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 문장을 처음 마음속으로 말했을 때,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왜 이걸 이제야 허락했을까 싶어서. 나는 꽤 오랫동안 당신들의 시선을 거울삼아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거울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니 말해도 좋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100년을 비난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만큼 당신들을 위해 무너져주지 않는다. 당신들의 말이 비평이라면 귀 기울이겠지만, 비난이라면, 그건 내 몫이 아니다. 받아줄 이유가 없다.


나는 당신들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삶에도 '비평가'가 있는가. 날카로운 말로 당신을 재단하고, 그게 다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번만 물어보자. 그 말이 당신을 더 단단하게 세웠는가, 아니면 조금씩 작아지게 만들었는가. 그 질문의 답이, 그것이 비평인지 비난인지를 알려줄 것이다.


비난을 비평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당신도 그 무게를 다 짊어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불만을 받아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