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 비움
나에게 다가오는 아픔이란 것은 실로 작고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이 지구의 넓고 방대한 고통의 용틀임에 비하여.
그러나 그 작은 아픔이라도 이 미물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괴로움으로 다가오는지.
삶에 자신을 가질 수가 없다.
작은 충격에도 아픔과 고통으로 숨조차 가누기 어려워,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심장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자체가 지옥이다.
스스로의 의지가 따르지 못하는 소극적인 삶의 진실은 점점 더 요원해지기만 하고, 이대로 내 존재 자체가 소지한 가능성은 영원한 신비로 그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무엇을 뜻하기에, 무엇을 위해 내가 존재하고 있는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뜻으로 세상에 태어나, 어딘가에 종점이 있을 듯 향해지지만, 진정 갖춰진 것도 없고, 닿아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삶이라는 것에 놓여 있지만 하는 일 거의 없고, 그저 흩어진 역사의 귀퉁이에 자리한다는 명목을 가질만큼인 것.
애쓰고 싶은 희망이 나의 가치를 판별하는 시각에 뽀얀 재로 변해버리고 만다.
가치 없는 생물로 존재해 공연한 오염을 끼치는 외에 별 이룩한 일 없다는 사실이, 내가 사라져야 할 이유인지, 탄생에의 모순인지.
생활의 가치와 아름다움의 대명사들이 멀어져 있는 이 권태로운 곳에, 언제까지 이 같은 상태로 부지할 수 있을지.
죽을 땐 누구나 고통스럽고 비참하다.
병으로 앓거나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가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어, 삶의 기능과 균형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맛보며 육신이 찌들고 닳아가는 노쇠함이 있어야 죽을 수 있다.
난 아프지도 않고 노쇠하지도 않으니, 신체의 균형을 치명적으로 깨뜨려야만 사라질 수 있는데, 그 고통은 싫다. 아무리 짧더라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다. 삶의 고통도, 죽음의 고통도.
내게 주어진 한 줌만큼의 가능성조차 내게서 사라진다는 사실도 참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나를 이긴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는 것 같다.
나를 이기고 현실을 이기고. 그래서 어느 쪽이든 옳고 바르게 보이는 모습으로 바뀌면 좋겠지만, 그 모두를 차치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현실을 극복한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여, 마음속에 포기라는 단어만이 맴돌고 있다.
반항으로 들끓는 가슴속의 불꽃들, 한계와 불가능으로 점철된 현실의 답답함, 모든 것을 잊기를 바라고 그렇게 된 것처럼 하기로 하자. 정말 잊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자신은 어떤 테두리 안에도 가두지 않으련다.
좀 더 체념된 상태와도 같고, 좀 더 의욕적인 상태와도 비슷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