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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과수원 40

변함없는 오늘에 복종한 영혼의 평화

by 주단

- 변함없는 오늘에 복종한 영혼의 평화


오늘 애쓰려던 만큼 애쓰고, 쉬려던 만큼 쉬면서 변함없이 지나갔습니다.

별다른 보람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신은 피곤으로 감싸여 있습니다.

뭔가 했기 때문입니다. 복종을 했습니다. 오늘을 누리라는 명령에 복종하고 내일을 찾아다니노라 기력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바로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누워있든 서있든 앉아있든 공부하든 일하든 변하지 않는 것은 모두 평화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평화롭지 않기에 그래서 좋다는 겁니다.

영원한 평화는 무일 뿐입니다. 침묵도 죽음도 아닙니다. 침묵은 번잡을 내포한 개념이고, 죽음은 삶과 변화를 반영하지만, 영원한 평화는 차라리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과 환경과 주위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진리 역시 변합니다.

어릴 적에는 아름다운 것이 진리였으나. 지금은 아름다움도 독과 가시를 품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배고프면 배를 채우는 일이 최적의 이치이고, 추울 때에는 몸을 덥히는 일이 최상의 일입니다.

때에 따라 개체에 따라 진리가 변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내가 알 수 없는 일들, 이처럼 끝없이 변화하고 나아가서 도달할 곳, 이처럼 부지런히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것, 이 공간 안에 발붙여 살기 위해 애쓰는 것들의 종말.

변화에는 적응할 수 있고, 명령이라면 죽도록 복종할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은 이해조차 할 수 없습니다. 두려운 것들입니다.


탄생, 영, 죽음. 현실은 이처럼 명백한데, 그에서 좀 더 나아간 사실들은 조금도 들여다볼 틈을 남기지 않습니다.

만져보면 무언가 이룰 듯 꿈틀거리고 있지만 흙 속에 한 줌 먼지로 남을 것을 생각해 봅니다.


애써사는 그것으로 만족하렵니다.

스스로를 느끼고 그럴 수 있을 시간까지만 느껴보겠습니다.

그 이상이라면 오히려 허무해질지 모릅니다.


잠깐 만족할 여유가 있다면 충분합니다. 그것은 완벽이거나 그에 가깝습니다.

항상 무결하다는 것은 허구의 개념이지만, 때로 불만하고 불행에서 자신을 찾아 넓은 시야를 바라보는 것은 완벽에 가깝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하고 노력할 수 있는 기회, 애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불행하든 행복하든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굳이 최선으로 최대한의 것을 구하지 않아도, 즐기고 노력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끌어 나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오늘을 모두 소진하고 지친 몸을 정지하여 무심히 허공을 바라보노라면, 수많은 상념들이 와락 머리를 휘감아 버립니다.

피로에 지친 마음속에 무수한 상념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날아가 버립니다.


뇌리는 텅 비어있고, 주위에 떠도는 영들이 나를 몰아 어디론가 유인해 갑니다.

그러나 깊이 잠기지는 못합니다. 저 먼 곳으로 빠지면 다시는 헤어나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주위는 고요하고, 내가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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