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MBTI 유행 현상
짐승은 야생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먹고, 자고, 집을 짓는 모든 행위가 오롯이 생명 유지와 직결되어있을 뿐이다.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같은 의식주라는 틀에서 남들과는 다른 고차원의 의미를 찾아내곤 한다. 어떻게 하면 내 모습을 심미적으로 꾸밀지, 음식을 맛있게 즐길 수 있을지, 안식처를 편안하게 구성할지 따위 고민이 인간의 삶을 짐승의 그것보다 더욱 윤택하게 만든다. [행동 양식의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것, 만물의 영장만이 가진 고등한 능력이다.
그러나 최근 젊은 현대인들은 '이 능력'을 경시하거나, 혹은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인기를 끄는 MBTI 검사는 두 가지 경향을 그대로 투영하는 실례다. 먼저 전자의 경우다. MBTI 유행을 선도한 인스타그램에는 손쉽게 여러 사진을 업로드 가능한 일종의 단발성 게시물인 ‘스토리’ 기능이 있는데, 이는 여타 SNS의 일반 게시물에 비해 신속하고 자주 노출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MBTI 역시 초기에는 소수에 의해 시작된 것이 스토리라는 효과적인 수단을 활용, 빠르게 확산하였다고 본다. 그 안에는 최신의 흐름에 뒤처지고 싶지 않은 개개인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일각에는 검사에 별 흥미가 없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다만 동인(動因)이 자의가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오로지 유행에 편승하고자 하는 모습이 획일화된 문화의 몰개성적 전파라 할 수 있다.
역으로 이러한 현상이 '이 능력'을 과도하게 활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검사가 내면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양 놀라워한다. 그리곤 친구들과의 공유를 통해 서로의 실제 모습과 MBTI 상의 결과가 얼마나 유사한지 가늠하며 유희한다. 이는 SNS를 넘어 실제 일상에서까지도 이어지는데, 성향이 자신과 비슷한 집단에는 허물없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반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상대를 충분히 겪어보지도 않은 채 섣부른 색안경을 써버리고 만다. 모두 16가지 퍼스널리티 중 하나의 유형을 마치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동치 한 채 행위한다는 방증이다.
위와 같이 MBTI가 유행하는 현상은 향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여러 질문을 남긴다. 흔히 다양한 견해와 사상이 공존하는 다원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 일컬어진다. 우리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커스터마이징 능력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고 양껏, 다채롭게 활용하여 각자만의 독창성 넘치는 에고(ego)를 확립해야 한다. 과거 90년대는 ‘개성시대’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며 자기 개성을 중요시하던 시대였다. 요즈음 인플루언서들의 SNS를 꼭 같이 따라 하는 젊은이들의 형상은 오히려 몇십 년 전보다 퇴보한 느낌이다. 남의 뒤만을 쫓는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니 곧 죽은 삶이다.
하지만 인간이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는 그만큼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별화된 다수의 군상과 필연적으로 마주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자칫 에고의 정도가 과중한 사람들은 그들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에 빠져, 속한 공동체와 어우러지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독선과 아집은 다원화 사회를 좀먹는 벌레와도 같다. 다른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해서 통상 법이나 도덕적 규범을 거스르지 않는 이상, 옳고 그름은 무엇에 의해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누군가 자신의 주장을 들어주길 원한다면, 나 또한 관용의 태도를 견지하여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양측이 합의점에 다다를 수 있는 절충안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인간관계 유지의 기본이자 더 나아가 전체 사회가 발전하는 검증된 경로다. MBTI도 본래 목적은 상대방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16가지를 넘어 수천, 수만 가지의 퍼스널리티가 온전히 이해되고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 사진 출처 : all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