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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omad Jul 11. 2024

김치 꿀 맛 남들은 죽을 맛




[QR]  영화 <식객> OST - Main Theme (황상준)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며 그 여정 내 식사문제로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해 가는 여행객들이 있다.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고 현지 이동 간에도 부패 정도가 심하지 않은 통조림 깻잎이나 낱개 포장의 김을 들 수 있다. 튜브 타입의 고추장도 아주 요긴하게 사용된다. 그런데 가끔 포장용 김치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항공기 기내압(해발 2000m 유지)과 따뜻한 차내 온도 등 보관 여건으로 여행 삼일째가 넘어가면 임신 8개월 산모 배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배가 더 커진다는 게 문제다. 안하무인의 무식함으로 밀폐된 현지 식당(만약에 에어컨까지 작동 중이라면 최악의 사태 발생)에서 포기김치를 개봉하게 되면 현지 식당의 냄새와 뒤섞이며 우리도 맡기 힘든 쉰내가 나게 된다. 글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화학탄에 가까운 냄새가 삽시간에 주위의 모든 시선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식당 매니저는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하고 종업원들은 초유의 사태를 어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그 짧은 순간 김치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일을 내고야 말았다. 당사자조차 일이 이토록 커질 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단테 신곡 지옥편의 누군가의 모습을 하게 된다. 파리에서는 사건현장(?) 가까이에서 있어서 재빨리 화장실 변기를 이용해 몇 차례 물을 내리면서 처리하고 정중한 사과와 현지 손님들에게 매니저를 대신하여 다시 한번 사과하는 선에서 천만대행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베네치아에서는 늦은 처리시간과 더운 여름철 에어컨 가동 등 몇 가지 일들이 순차적으로 맞물리고 설살가상으로 뻔뻔한 당사자의 행동으로 식당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같은 식당을 이용한 적이 몇 차례 더 있었다. 지금은 매니저와 친해저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날과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자기는 테러에 준하는 대처와 처리를 할 거라고 단호히 밝히며 얼굴이 굳어지곤 한다. 워낙 혹독한 기억이라 잊을 수 없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여행 경력이 좀 더 쌓이면 분명히 좋아질 내용이지만 아직도 현장에서는 애로사항이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말처럼 일방적으로 여행객을 가르치려 들 수도 없고 현지인들에게 이해 달라고 말하는 것도 어는 정도다. 여행객 스스로가 느낄 수 있게 안배하고 경험치를 늘릴 수밖에 없다. 


5년 넘게 여정을 함께한 '막시모'라는 이탈리아 버스 기사가 있다. 요즘은 버스 5대를 소유한 어엿한 사장님으로 그중 1대는 스스로 운전을 하며 성실함을 보이고 있다. 본보기가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기사와 손님 간에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 멋진 서비스와 여행의 만족도라는 부문에서 최선을 다하는 멋진 기사님이다. 전화벨이 울리면 '프런트'라는 이탈이어가 아닌 '여보세요'라고 할 정도로 위트도 있는 사람이다. 차 안에서 오징어 등 건어물을 누군가가 먹으면 일반적인 기사들은 기겁하며 경고를 하든 심하면 차를 세우는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시모 기사는 땅콩 껍질을 벗겨서 달라고 한다. 이 얼마나 한국인을 이해하는 행동인가! 한 번은 참깨를 볶어와서 일행들에게 아침마다 한 숟가락씩 나누어 주는 분이 계셨는데 그런데 꼭 차 안에서 나누어 주었다. 기사가 도대체 저건 뭐냐며 작은 양인데도 어쩜 차 안에 이토록 희한한 냄새를 풍기냐는 것이다. 떨어뜨리면 잘 쓸어지지도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화학조미료와 다르게 한국 순수의 자연 조미료라고 설명하고 씨앗을 볶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어설픈 설명을 들은 기사왈 한국은 얼마나 먹을 게 많으면 다음 해 농사에 필요한 씨앗을 음식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그 해석을 들은 나와 여행객들이 더욱더 놀라워했다. 그런 막시모 조차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모 회사의 포장김치가 이탈리아의 더운 여름 날씨(섭씨 40도 이상)에 달리는 차 안의 화물 간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터져 버리고 말았다. '뻥' 소리와 함께 모든 승객이 타이어를 생각했으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모두 그보다 더 큰 문제 발생을 염두에 두고 모두 코를 막았다. 나도 막시모도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솔솔 퍼져가는 냄새의 원인을 제거하고자 가까운 휴게소에 차를 멈췄다. 대형버스 짐칸 문을 열자 냄새는 더욱 확산되었고 어느 가방인지는 코가 안내해 주었다. 문제의 김치가 터진 듯한 가방을 열자 아뿔싸 모든 옷가지와 소지품은 홍콩 누아르 영화의 어떤 장면을 연상시키듯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고 냄새는 이미 사람이 감당하기에 어려운 상황까지 연출됐다. 도저히 이 짐들을 가지고는 운행을 할 수 없다며 정중하게 짐들을 포기하든지 자기가 차를 포기하든지 하겠다며 차에서 멀리 떨어졌다. 기사를 진정시킨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아뿔싸 손님은 손님대로 옷을 물에 헹구어 보겠다며 휴게소 화장실로 향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쏟아 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진퇴양난! 여행객들도 나도 기사도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비닐봉지를 구해서 포장하고 또 포장했지만 몇몇 짐들은 휴지통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워낙 단호하게 화를 내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천만다행으로 생각한 것이 만약에 호텔방이나 로비에 있는 상태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며 아찔함을 느꼈다. 호텔에서는 한국 단체 여행객을 받지 않을 터이고 그 직원의 친구가 있는 호텔도 마찬가지일 거고 일파만파 그러면서 여행의 내공이 쌓여가는 게 아닌가 싶다. 진심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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