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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사람 14화

열린 결말을 끌어안는 일을 버텨 줘

- 자기 자신을 믿고 보면 됨


‘순수하다 ‘와 ’ 순진하다’는 다르다.

‘순수한 분이세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내심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왜 이렇게 순진해?‘라는 말은 비아냥이 섞여 있고 듣는 사람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오늘은 나더러 ‘순수하다 ‘고 말한 사람이

사실은 ‘너 참 순진하다 ‘라고 단정 지었는지 여부가

내게 미칠 영향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결말이 없는 것도 결말이 정해진 것



영화 ‘쇼생크 탈출(1995년)‘이나 ’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해)‘와 같은

‘드라마틱하고 어쩌면 그로테스크적인’ 결말에 열광한 반면,

열린 결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열린, 널린 가능성의 수에 절망했다.


실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겠다.‘, ‘생각한 후에 연락 주겠다.‘와 같은

피드백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는다면 누구나 ’ 거절이로구나!‘, ‘연락은 오지 않을 거야.’와 같이 생각하지,

‘오! 연락은 꼭 있을 거야.‘라든지 ’ 신난다! 나는 잘 기다리기만 하면 돼.’라면서 방긋 웃지는 못하는

심정이 된다.


왜냐하면, 열린 결말이 있는 작품의 작가라든지, ‘생각해 볼게요.’의 주인공들에게는

나름의 기준과 생각이 책정되어 들어 있어서

그에 맞지 않았을 때는 소거법에 의해

하나, 하나, 소거해 나간다는 게 공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담 열어 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맞다. 아직까지는 독자라든지 관객이, 또는 자신의

파트너가 자신이 소거시켰거나 소거할 예정인 어느

가능성에 대해 깊은 선망과 기대를 품고 있으며

잠재된 고객으로서 수익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바로 자르거나 상상력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일을 그르치게 해선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상대방도 그다지 없기 때문에

한 판의 대형 눈치 싸움이 존재하게 되며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서로서로가 사용자가 되었다가 수익자가 되어 가며 엎치락뒤치락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판가름이 나고 만다.


이쯤 되면 감이 느껴지실 텐데 이것은 인간관계의

법칙이기도 하면서

연인들 사이의 탐색전에서도 끝없이 반복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오래오래 서로를 바라보다가 좋아질 가능성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만족스럽거나 기대 이상이어서 만나게 될 가능성보다 높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때 힘의 우열은 매력의 강도에 의해 나뉘고

동물 세계의 서열화가 관계 맺기의 전체 단계에서도

완전히 일치하는 유형으로 나타난다.


결말을 알고 있는 자, 결말을 쥐고 있는 자와

결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선택권도 갖지 못한 자, 받아들이기만 할 수 있는 자,

요렇게 구분이 돼 버리면 한쪽이 다른 한쪽에 마냥

끌려가게 된다.

약한 자, 그의 이름은 결말 ‘부인‘자이며

마지막에 보고 싶지 않은 결말을 끝내 목도하고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고 머문 자는 최종 약자이다.



“으앙!!” 울며 돌아가 안길 엄마 품

같은 건 없다.



이쯤 되면 힘이 무척 들어간다.

운동 좀 해 보면 몸에 힘이 들어갔을 때(긴장할 때 포함) 일어나는 망할 조짐들을, 그 포인트를 알게 된다.

일단 자세부터가 무너지고 이에 우왕좌왕하기 이르면

의례히 조급해져서 근육이고 뭐고 없이

식은땀만 퍼 올리다가 망해 버린다.


뭐가 잘 되는 길인지, 어떻게 나를 잘 보이게 ‘포장‘해야 하는지, 딸린 자는 하루 종일 쥐어짜 봐도 답을 모른다. 왜냐하면 이미 나의 ’ 카드’는 정해져 있고 내 스펙은 한참이나 밑이기 때문이다.


자꾸 힘이 들어가니 표정 관리가 안 되고

원래부터 취약한 멘털은 성냥개비처럼 부러져 나간다.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게 되고

잘하던 일에서도 미스가 나오면

누구나 ‘정신을 차려야지’, ’ 정말 내가 이래선 안 되는데.‘ 하다가 시간이 다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자존감이란 것이 늘 버티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적 관계의 연속에서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현실을 이기기 위해서는 결말까지 버텨 줄 내공을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우선,

“그러든지 말든지 네 맘대로 해 봐라.”를

세 번 복창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최악의 결말

두셋을 놓고 시뮬레이션을 엄청 많이 해야 한다.

그 이후로도 내가 살아남아야 한디는 철칙만 남고

나머지는 다 변수다.


예를 들어 연인 사이에서 가장 싫어할 결말이

‘이별 통보’ 일 텐데

‘그동안 지켜봤는데 우린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 보자.‘와 같은 말이 날라 오면 말이다. 수없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동 발사되는 답을 꺼내야 한다. ’아 그러셨군요! 좋습니다. 그럼 이만...‘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는 원치 않는 결말이 예상될 때부터 만들어 놓았던 2,3안으로 노련하게 넘어가야 한다.

굳이 미련을 두어야 한다면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시진 않은가요?‘ 정도로 그쳐야지, ‘나는 몰랐네 ‘나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를 외쳐선 안 된다.


유아 시절의 사진을 굳이 앨범에서 꺼내어 촬영한 것을 연인과 함께 봤다. 그가 말했다. “용 됐네.”

용은 되었을지 모르나 그 시절 언제든지 걷다가 넘어지면 “우와~~~아앙앙!!!” 울며 돌아가 안길 수 있었던 엄마 품이란 어디에도 없는 세상이다.

그러니,

첫째, 잘 걷기,

둘째, 넘어지면 일어나 툭 툭 털기이다.


방법이 없다.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해야 한다는 야생의 ‘인간 시장’에서

멘털이 비스킷처럼 바스락거리는 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선

버티는 것 하나라도 잘해야 한다.

언젠간 끝이 날 테니까, 조만간 알게 될 테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TItg8ptImXU&pp=ygUY66Oo7Iuc65OcIO2PtCDsmKQg7IKs656R

그래도 사랑이었기를... ‘사랑의 기술‘민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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