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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사람 13화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당연한 일을 하지 않고는

- 인생을 잘 살아갈 수가 없다는 걸 알지만.


비겁한 행동이다.

연락처를 삭제하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일은...

그러나 또다시 하고 말았다.


혼자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고,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일은 당연하다고,

그런 말을 하는 맘 속 외침을 분명 들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만남의 이면에는 헤어짐이 딱 붙어 있다는 생각에

점점 그가 소중해지고 매일 그의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견디기 힘들어졌다.

혹시나 그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듣게 되면 밀려올 슬픔이 두려워 벌벌 떨다가 끝내

연인을 두고 나 먼저 돌아섰다.


그러고 나서 며칠째 나의 마음은 사랑을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차 컴컴한 어둠 속에 있다.



곁에 있고 싶은 사람,

곁에 있지 못한 사람



용기 있었다. 다른 모든 일에서는.

그러나 ‘사랑’만은,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린 두려운 일인지 생각하기에 이르면 마치 질식되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랑이라곤 도대체 할 줄 모르는

겁쟁이에 불과했다.

이성과 감정의 분리나 단순 착시 현상으로 결론지었던 서넛의 지난 일들이 자꾸 떠올라

연인에게 향하는 내 감정이 점점 커지는 걸 느끼자

결국 도망칠 결심만 하고 말았다.


내가 먼저 선수를 쳐서 끝내면

상대가 나에게 끝내자는 말을 할 수 없다.

내가 이별 통보를 받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

심한 ‘정신 불안’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내 쪽이 만남을 중지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와 처음 만난 그 자리에 와 있다.

만나기 전까진 이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던 사람이

순식간에 눈뜨면 생각나고, 눈 감으면 보고 싶어 져서

이다.


그런 너무나 생소하기 짝이 없는 감정에 압도되는 것에 적응할 수 없어서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아서,

자기 연민에 빠져서,

오랫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은 불안이 방어 기제로

작동하자

그만 ‘사랑‘을 놓아 버렸다.

대참사가 아닐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날로부터 나의 하루엔 해가 뜨지 않고

내 얼굴은 억지웃음으로 분칠이 되었고

피치 못할 일처리만 간신히 때우는 식 밖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면

또다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지만

이젠 닿을 수 없는 사람일 뿐이다.


통신사의 유심이 소진됐듯

내 마음의 재고도 말라 버렸다.



알지만 하지 못하는 일



사랑에 빠지고 상대방에게 애착을 갖는 것은 가장 강렬하고 풍요롭고 활기 넘치는 인생 경험 중 하나다. 친밀감과 달콤함, 상대의 마음에서 소속감을 발견하는 기쁨, 그의 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황홀함을 경험할 기회를 스스로 빼앗아서는 안된다. ('예민함이라는 선물', 이미 로, 2022년, 242쪽)


그렇긴 하다. 알지만,

기회를 잃고 다시 얻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새로움을 원한다고 썼었고 아주 많이,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두렵다.

혼자 일을 처리해 버리는 데 적응된 나 같은 사람은

시람을 만난다는 일만큼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기 아주 쉬웠다.


여기까지 쓰고 눈을 들었을 때

지하철의 맞은편에 앉으신 어느 여성이 휴대폰을 보시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손수건을 꺼내어 훔치시는 손길을 보며 내가 내릴 데에 와서 하차했다.


‘한 사람’은 눈물로 왔다가 웃음으로 가는 게 아니다. 아예 사랑은 눈물로 가득 차 있다.

두근거림, 조마조마함, 마음 졸임 때문에 나도 울었다.


알지만 사랑에 빠지는 일은 아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마음 때문에 내가 힘들어지게 되었고 앞으로 만남이 이어지면 더 힘들어질 것이었다.

그때 찾아온 생각이 ‘이게 아닌가 보다. 이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이면 대개 멈추게 된다.

불안한 미래를 보다 안정적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서로에게 각각 있다.

그래서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지만

상처받기 싫어하는 것으로 삶의 이력서를 써 온 내게

우선 떠오른 일은

어떤 것이든 역경을 회피하려고 하는 시도이며,

결국엔 도망쳐 나온다.

역경을 이겨내리라 다짐했던 나였지만

막상 ‘한 사람‘과의 결말까지 이어가는 줄다리기에서

밧줄을 슬며시 내려놓고 나와서는

다시 혼자가 돼서 글을 쓴다.


요즘, 알지만 하지 못하는 이런 유사한 일들이

나를 깊은 생각의 심연으로 데려다 놓곤 한다.

하루하루가 질겅질겅 한 고민들로 편한 날이 없다.

이것도 과정인지, 나는 언제 ‘한 사람‘을 찾을 것인지

답은 정해졌는지 누군가가 알고 있다면

내게 알려 줄 순 없느냐고 정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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