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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사람 11화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착각

- 좋긴 하다


한참 동안을,

말하기는 여러 가지가 떠오르고, 가슴 아플 수가 있는 얘기지만

코로나 발생 이후로는 대중 사우나에

좀처럼 가지질 않았다.

한동안을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목욕탕 문화에

푹 빠진다는 식의 기삿거리들을 접하면서도

‘컴백‘을 늦추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번 주에 갔다 오게 되었다.

‘이 좋은 것을 내가 그동안...(너무 늦었다...)‘

그런 생각이 당연히 밀려왔다.


세신사 분들이 마침 교대하시는 시간이었다.


오전 10시 교대식이

어느 궁궐 수문장들의 그것처럼 꼼꼼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나로서 온탕 속에 앉아서

앞엣조가 자신의 ‘기물’을 하나하나 닦고 챙기는 동안

뒤에조가 거기에 겹침이 없이 완전한 교대가

이루어지도록 분초를 맞추다시피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일에서 모두 소정의 절차와 룰을 지키며 살아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일도 대충대충 해서는

사람이 살아갈 만 해지지 않는다.

당연한 것을 나는 여전히 눈으로 보아야 믿고

말로 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오늘 우리가

살 만한 세상에 와 있다.

무책임한 인간의 무리들이 큰소리친다 해 봤자

우리들 탕 속의 세신사 교대식을 막을 수는 없다.

아무리 분탕질을 누가 쳐 놓아도

개개인의 식당에서 팔리는 공깃밥 개수는

늘 거기서 거기다.

삶은 계속되니까.



잔소리도 할 만한



노랫가사가 내 노래 같을 때란

대개 실연이나 상실의 아픔이 클 때이다.

사람이 조금만 상처가 비껴 가도

또 그때 맘 같지가 않게 된다. 사~~ 아악 변한다.


지겹던 잔소리가 그리워질 ‘ 때도 있단 걸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

가수 허각의 ‘나를 사랑했던 사람아.‘라는 곡에서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https://naver.me/FnmP4abt


그런데 말이다.

지독히도 떼어지지 않던 마음을 결국 떼어내고

돌아선 사람에게도

스토리는 있다.

비단 ‘잔소리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상반되었거나

내가 살아있는 동안 채워지지 않을 격차

- 특히 무서운 건 ‘생각 차이인데’- 가 있어서이다.

그가 나무꾼인데 나무를 해 오지 않거나

내가 선녀인데 나한테 나무를 해 오라는 등등

케이스는 대단히 많은데

이게 또

잔소리를 해서 고쳐지고 나아질 문제라고

생각되지가 않는 게 핵심이다.


잔소리는 해서 들으라고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하는 것 자체가 서로 간의 관계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골이 깊어지면

잔소리가 줄어들고

한편이 하지 않게 되므로 다른 한편이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

아니다.‘라는 것이다. ‘당신은 아니었음‘ 꽝! 꽝! 꽝!

손을 내밀었지만 잡지 않은 것이

횟수와 강도가 반복되고 강하게 부딪히자

끝내 돌아 나오게 된 것이 이 스토리의 결말부이다.


그런데 말이다. 먼저 계속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생각이

결국 사람과 사람 간에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착각‘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원치 않는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적다.

그것이 봉사일 때에도 자원을 해야 하는 것이고

사랑도 열정이 먼저 불타올라야 어려움을 뛰어넘는 것이다. 한쪽이 ‘도저히 이건 아냐.‘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한다면

가스라이팅 당했거나

도저히‘ 가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그렇게 하는 경우밖에 없다.


거기 무슨 미사여구를 달려고 하지 말자.

인생은 생각보다 길 때가 많다.

참고로, 한강의 비둘기도 마음 맞는 애들끼리

둘씩 날아간다.



우리 둘이 먼저 갈게~~ 우린 잘 맞아서~~~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인데?



삽질을 오래 하면 땅이 움푹 파인다. 땅 파는 게 일단 목표이긴 하다.

여기서 삽질은 대개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 걸 알고 하는 게 유망한 거다.


사람은 전해지는 긍정과 부정, 둘로 나뉘는 기운

딱 갖는다. 나를 긍정하는지, 또는 경계하는지는 처음에 딱 부딪혀 보면 알 수 있다.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거나

어떤 이유로 깔보려고 한다면 바로 내게 감이 잡힌다.


이때 갈아 넣지 말자. 제발.

그 사람은 이미 나를 제쳤을 때

내게서 들어갈 잔소리는

그에게 ‘증거‘로 누적되기 밖에 효용이 없다.

나를 계속 하수로 무시하거나

나를 더욱 싫어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말 거다.


브런치의 명작가이신 초맹 님 책을 공공도서관에

신청하고 일착으로 내가 읽었다.


출처: https://naver.me/FCA9wRFN


그동안 내가 마냥 불안하게 생각했던 사내용/업무용 메신저의 ‘로그‘를 키포인트로 한 시스템 감시에 대해

풀어 주셨다.(138쪽)


가급적 사용량을 줄이고 업무상 전달할 내용만 그것도 간략화해서 보내는 용도로만 쓸 것: 그것이 사내 메신저의 사용 수칙임을 확인, 또 확인하면서


누구도 ‘감이 오지 않은 ‘ 경우에

내가 이것도 해 줄 수 있고 저것도 해 줄 수 있다라며

내 패를 오픈해선 안 된다 함을

일상생활 수칙으로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좋긴 하다. ‘끝없는 사랑‘, ‘혼자서 하는 사랑’, ’다시 시작하는 사랑’, 하물며 ‘츤데레 매력 발산‘도 나쁘지 않지만, 알아 둘 것이 있다.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 중심이어야 한다.


마음 상해 가며 까지 남에게 잘해 주거나

끝끝내 받아 주거나, 끝을 내지 못하고 무한 반복, 그런 걸 해선 안 된다. 그건 직계가족용 스킬이니 남겨 두자


그냥 딱 말해서

내 삶의 소중함을 훼손하기 금지.

내가 더 잃고 남이 더 따 가는 게임도 금지이다.

초맹 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삶은 나 스스로 끌고 가는 것‘이다.(321쪽: 에필로그 중에서)

어떠냐고요?

남 좋은 일 시키지 말자 ‘고 하겠습니다.


어떤 이유로건 삶은 계속되는 것이 맞고

남의 삶에 내가 끼어들 이유도, 여유도 많지 않다.



나도

에필로그~



오래전에 본, 최 모 탤런트가 출연한 드라마 한 장면이

나는 좀 각인된 것이 있다.

주인공(최 모 분)이 운전하고 가는 차 앞에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던지다시피 한 몹쓸 장면이었다. 요거 요거, 하지 말자는 얘기다.

말이야 좋지만

내가 남을 거들 수 없고

저런 식으로 남의 삶에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

넌지시 알려 주는 일도 그만하자.

챗GPT가 다 알아서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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