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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사람 12화

내가 애태울 일인지, 애태울 일이 아닌지

- 생각한 것보다 복잡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으셨군요! “

‘그 일‘이 있고부터니까

이 년이 넘은 시간 동안 책은 어딜 가나 내 손에 늘

하나씩 들려 있는 편이다.

오백에서 천 권 사이, 읽은 책 수라고 하겠다.

세지 않고 살아간다.

세어 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그거 세는 사이에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늘 있다.


책 많이 읽으면 책 읽기가 빨라진다.

보통의 하루라면 하루 두 권(삼백 여 쪽 기준),

아주 보통의 하루라면 하루 한 권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 낸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 맞다면 큰 이유 한 가지는 이것, 속도가 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게 되는 이치 때문이다, 즉 책 속의 ‘책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주, 어느 독서 중 그 안의 책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나는 정말 숨 정지하고 단숨에 읽은 것이 한 책 있었다. 아주 빨려 들어가는 정도였다.



알아도 알아도 모를 사람



그 책은 바로 서진규 님의 아래 책이었다.

읽은 책 표지 사진 (2011년 출간)

이 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예전에 접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도 거의 읽어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제자리 걷기를 하셨다는

‘김수연’님의 책(아래 링크, 2022년, ‘꿈꾸는 삶이 또 다른 꿈을 낳고 ‘(267쪽)) 속에서

이 책 소개를 발견하곤 바로 읽게 되었는데

이것이 ‘블랙홀‘이구나! ’라고 느낀 것이다.


https://naver.me/5apc7g7O

중단할 수 없이 내쳐 읽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삶을 살 수 있었더란 말인가!


세상에, 희망 없이 산다는 일의 막막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는가.(71쪽)

일단 자기 자신과 합의가 이루어지면,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 (83쪽)

자신이 하는 일이 그저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큰일을 하지 못한다. (152쪽)


예전에 책을 읽었을 때의 나의 상황을 나는 알고 있다.

책의 출간 연도를 보아 짐작이 가는 바 있다.

무엇이든지 준비가 된 상황이 아니면

온전히 내 것, 내 경험이 되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나는 그 당시 더 큰 의미 있는 변화를 선택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정신머리가 못 되었었다.


위 두 책에서 전해받은 용기는 한 가지 사실을 방향으로 던진다.

오늘을 사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

당장의 나는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삶은 습관으로 점철된 것이기 십상이고

떨쳐 버리기 어려운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담요처럼 나의 발걸음을 덮고 시선을 흩어 놓는다.

강하게, 그리고 삶에 대한, 나 자신과 남에 대한 큰 사랑으로 이 생을 붙잡고 싶어 지게 만든

두 책과 훌륭한 두 저자님들에게 존경심을 느낀다.


알아도 알아도 모를 인간성의 위대한 승리이다.

어쩌면 나 같은 불초에게도 장착되어 있었을지 모르나

살기 위해, 그저 살기만을 위해 탈락시켜 버린

날갯짓이 떠올랐다.



알면 알수록 좋아지는 사람



‘나는 누군가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 존재인가?‘

대해 아예 궁금해하지도 않거나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살아왔다.


‘누가 나한테 호감이나 있겠어?

멋진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은 세상이지 말이야?

아무렴 그렇지...!‘

이쯤 되면 ‘송충이 솔잎 먹어야’ 한단 얘기까지

말 나오길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어른의 시간’, 줄리 리스콧-헤임스, 2022년, 165쪽)


그것도 ‘좋음’을 원인으로 해서 가까워지려 하고

만나서 함께 있으려고 한다. 때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우리는 그를 위해 준비하여야 한다.

언제든 누군가 만나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좀처럼 용기를 낼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때를 위해 위 김수연 님이 언급한 ‘마지막 강의’(랜디 포시, 2008년)를 읽고 있다.

‘내 몸은 지금 문제가 좀 있다.’로 서문을 시작하는

이 책에서 랜디 포시,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대학 교수인 그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도 있다.’는 월트 디즈니의 말을 인용(33쪽)하는 심정을 따라 읽다가


내가 애태워야 할 것과

애태울 일도 아닌 것을 가려 냈다.


빨리, 그리고 온 집중력을 다 해서

지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한다.

물론 통째로 다 타 버리는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또 남들의 인정을 추구하느라

내가 원하지 않는, 내게 맞지도 않는 길을 가려고

시도도 해선 안 된다.


요컨대, 죽기 전에 우리는 꿈꾸기를 멈출 수 없다.

‘나의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는 맘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


자신이 애태워서 바뀌지 않을 ‘몸의 문제’를 뒤로 하고,

혼신을 쏟은 ‘마지막 강의‘를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포시 교수의 용기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입을 다물기로 한다. 그건 내가 애태울 일이 아니라는 뜻에서이다.



sticker sticker


(댓글 ‘허용’을 ‘허용 안 함‘으로 잠시 돌립니다.

브런치 작가 아닌 누군가의 도배 덧글이 따라 붙어서

글 내는 손이 오그라들 뻔 했거든요.

저는 초보이니까요~ 양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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