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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사람 09화

꽤나 바쁜 척해 봤지만: 이 정도까지 해 봤어?

- 차이는 컸다.


아침 출근길, 전화기를 든 남자가 백 백 소리친다.

“네가 집 나가라고 해서 내가 나온 거잖아!”

그가 지금 얼마나 괴로울까!

화합할 수 없는 차이,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이란

인생의 가장 무거운 숙제이다.



해 보고 싶은 게 많았던 나라서



‘한 사람’을 보았다. 정확히는 ’한 전문가’이다.


어느덧 일에서는 전문적 판단을 하루에 몇 번씩

내려도 탈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노력도 있었지만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한 것만으로

그렇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 사람만큼은 그 어떤 것도 해 본 적이 없다.


꽤나 바쁜 척 늘 하고 있었지만 실상을 보면

벌려 놓은 일만 많을 뿐 수습이 안 되고 있다.

여러 번 도전하고 매일 가서 뛰어 올맀지만

성과가 안 나오고 실적이 없자

‘엄청 시고 엄청 맛없을 거’라면서

포도밭을 떠난 동화 속 여우와 같이 행동했다.

그 도전은 원래 말도 안 되는 것이었으며

더구나 나와는 맞지 않았다고 자체 정리를 매번 했다.

아까까지는 꼭 맛보고 싶었던 포도송이의 맛을

폄하하면서

도전에 여러 번 실패한 나를 스스로 방어하고 간신히 살아만 남길 수없이 반복했다.


‘세상엔 더 맛있는 것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라며

눈을 돌렸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간절하고 더 간절해야 했단 것을.

여러 가지 일을 하기를 딱 내려놓고 그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했던 것을.

그리고 정작 ‘꿈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는 게 실패 원인이다.

내 눈은 못 속인다. 자기 마음은 자기가 안다.


어느 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많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을 봤다.

자기를 홍보함이 이미 모두의 관심사가 된 세상,

알못이 잘알에게 “너 알못이잖아!”라며 지적질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봐도 다들

입 꾹 다물어 본 적 있으실 것이다.

모든 게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면서 그의 강의장에 도착했다.



해 보고 싶어서 다 해 본 사람



그는 차분히 강의를 이어 갔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이

설풋한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강의 내내 그가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한 어떤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건 바로 ‘해 보고 싶은 건 다 해 봤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뛰어다녀야 하는지

그것도 얼마나 열심히 진정으로 뛰어다녀야 하는지

할 일이 이미 쌓였고 시간에 쫓기는데도

해 보고 싶은 건 달려들어 다 해 보는 데

어떤 어마어마한 열정을 태운 건지가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달려들어야 한다고

한 번쯤은 ‘미쳐 ‘ 보아야 한다고, 미친 듯이 살라고

매번 자기에게 외치곤 했지만


내 관심과 능력은 늘 중요한 포인트마다 흩어졌고

결국 야트막한 해명과 변명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시험 볼 때마다 마침 그때 나온 만화와 드라마가

그토록 재밌더라는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여러 실패의 경력만 쌓였다.


여기까지가 저 분과 나의 차이이다.

똑똑함이나 타고난 명민함이 원하는 목표 달성에 미친 영향은 일단 측정이 불가능하므로

지금은 차치한다.

그러니까 열정과 집중력의 차이

해 보고 싶은 것만 많은 나와

해 보고 싶은 것들은 어떻게든 다 해 낸 저 분과의

차이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맞는 추리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무엇이 좋은지를 알 수 있는 지식과 경험



평범한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학습’이다.

찰리 멍거 바이블‘(2023년, 14쪽)에서 우리가 만나는

학습 기계‘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꾸준히 학습하라는 말이다.


아는 것만큼 행동반경을 갖는다.

아는 게 많을수록 넓은 행동반경을 갖겠다.

실제로 가만히 자기가 하던 일을 꾸준히 잘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다른 일을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시도했는데 무모했거나 조급하게 굴다가 낭패를 한번 보게 되면 다시 도전하지 못하고 움츠러든다.


실패도 경험이 된다.

나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 사람‘이 되고

위기나 고비의 시간에 자신에게 투자하는 방법들이

저마다 다른다는 건 거의 확실하단 생각이다.

돈을 쓰는 데가, 그것도 제법 큰돈을 가져다 어디에 쓰냐가 그 사람의 비중의 차이를 드러낸다.


아까의 ‘해 보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해 본 사람‘은

학습한 내용을 가져다가 실제에 써먹어 본 것이었다.

자신의 열정과 ‘성격’을 한 바탕 기름으로 쏟아부어서

탈 탈 털어 태우니까 그게 되었다는 이야기고

결국 안 해 보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힘주어서 남이 잘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서 신뢰성을 담보했고 경청하게 만들더라는 것이 내 체험이다.


아직 무엇이 좋은지를 모르겠다면 좋은 것을 고르는

방법과 안목을 길러야 한다. 여기서는 아무리 바쁘고 궁박하거나 쪼들리는 상황에서라도 배워서 따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할 수도 있고, 학습이 끝나고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학습한 내용을 적용하는 순차적 단계가 될 수도 있는데

바로 ’ 선택과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그마저도 노력을 탈락시킨 사람은 대개 하자가 있다.

품격이 떨어져 있다고 보인다.


또한 배우려고만 해서는 안 되며

이론이나 자기만의 스킬이 형성되면 실제에 갖고 와서 부딪혀서 해 봐야 한다.

주식 투자를 글로만 배워서 이론은 정통하나

한 번도 사고팔고를 해 본 적 없는 사람의 말은

들어봐도 매가리가 빠지는 것과 같다.


묘하게 설득되는 사람들의 비결은 그들이

실전에서 배운 것을 자기 지식과 무기로 삼아

더 큰 경험에 사용한 선순환을 여러 번 돌리면서

강한 자기 확신

‘하니까 되던데?‘라는 해냄의 스토리를 갖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해 봤어?”

“이렇게도 해 봤어?”

“좀 미쳐 봐야 정말 좋아하는 거 아냐?”라는

스토리는 무엇보다도 강한 울림을 준다.


오늘 아침 전화상으로 다투던 그 사람도

모르긴 모르지만

자신이 해 볼 수 있는 걸 다 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런 다음엔?

내가 혼자만의 느낌을 간혹 받는 사실인데

어쩔 땐 말이다. 시간이 대놓고 멈춰 준다.

내가 그것이 간절하여 한 가지만 매달리고 있을 때

시간이 나를 기다린다. ‘아직 너 준비 안 됐구나?‘라고 하면서

나를 응시하고 서 있다. 그리고...

그걸 내가 알아차리는 순간 시곗바늘은 다시 움직인다.

작가님들도 그런 경험들 있으시지 않은지..?

살면서 했던 신기한 경험 말이다.


내가 엔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엔카 전굉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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