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줄 놓으니 좋더라니
누가 내게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상황은 뭘까.
‘내가 다 해 줄게.‘라는 마음으로?
‘정말 뭘 하려고 하다간 다칠 것‘이라는 경고인가?
무엇이든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되었단 것이 중요하다.
나는 말하자면 투잡 쓰리잡을 뛰고 있다.
소득도 없고 배당도 안 나오는 나만의 일들이다.
퇴근 시각부터가 새 날이다.
아직 뾰족한 수는 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정말 바쁘게- 그게 누구보다 열심히였는지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뤄 보려고 하는데-, 자연히 많이 피곤하게 지내고 있다가
누군가에게서 ‘아무것도 하지 말 ‘란 말을 듣는 순간
해방감 같은,
굿에서 혼을 놓아 극락으로 보내 준다고 하는 저,
‘씻김’ 같은 분위기에
그건 아주 잠시였지만 달콤 쌉싸름한 유혹이었다.
‘나보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근데 요즘 투잡은 대세 아니었나?
한 가지 일만 해서 먹고살 순 있고?(구시렁구시렁)
행복에 대한 유혹보다는 현재 상태가 악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더 강하게 느낀다. (’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슈테판 클라인, 268쪽)
저 산을 넘으면 낙원이고 행복한 날의 연속이 기다린다고 하면
내 생각은 ‘아니오.‘이다.
산이 높을수록,
산을 넘는 데 걸릴 예상 시간이 길수록
그리고 중요한 것: 산을 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산을 넘는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한다.‘에
나는 한 표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 반응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목표가 크고 기대치가 높거나 완벽주의 성향인 경우
더 공포에 눌려 손을 못 대는데
목표를 낮추거나 작은 성공 경험을 쌓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완벽주의도 병은 병이라서 늘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시작이 반‘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시작을 해 본 사람이 잘 밀어붙여서 성과를 내는 게
사실이라는 것은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시작이
꼭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데서 알 수 있다.
단지 그들은 ‘성공적으로 전진’(위 책, 321쪽)했다는
차이가 오늘의 그들을 만든 것이다.
실패에 대한, 그리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에게 있다. 그것을 크게 느끼고
유리하고 유익할 수 있는 베팅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 즉 개인차다.
나로선 그렇다.
어차피 기존 기록을 경신하거나 목표치를 채우거나만 할 수 있다면,
유료로라도 콘텐츠를 구독했고
빨리 지식을 채워 실제 현실에서 적용하는 게
한걸음 빨리 가는 길이고
굳이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그러니 누가 대행료를 내면 일을 맡아 준다고 할 때
날아갈 듯 기뻤다.
‘삶이 고단하고 피곤한데 어서 맡기고 푹 쉬라고!‘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누가 내 일을 내 일처럼 해 주려고 할까.
결국 유료다, 가입비다, 해서 계약서가 따라오고
금전적 증빙이 들어갈 거다.
그건 내 일을 나처럼 하지는 않을 수도 있는 틈새다.
그들이 해 온 방법대로 구사할 것이고
나는 ‘본인’으로서 선택과 결정만 할 것이다.
즉 그들 방법과 그들 수완의 테두리에서
선택해야 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낯선 일을 해야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꺼운 편.
나를 대행해 준다면 그것도 새로운 시도라
적극 응했는데 에엥~~ 조건부 수락이 왔다.
‘지금이 아니고 나중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생각을 해 보게 된 것이다.
어차피 내 공이 다시 내게로 굴러왔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그 하나의 제안과 수락의 경험을
하는 동안 생각이 툭 트이면서 하나 둘이 열렸다.
당장엔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들과의 접촉과 어렵게 느껴진 판단을 거치면서
문제를 다루는 자세를 고치게 되었다.
장기적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허투루 가는 시간도 없고 헛 산 인생도 없다.’ 던 말이 생각났다.
살면 살수록
인생 공부가 격랑을 탄다.
정말 알아야 할 가치는
‘나보다 똑똑한, 당연히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관한 것이다.
결국 보폭을 줄이고 걷게 되며
‘겸손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 할 일을 내가 하는 데는 말했듯이 아무 불만이 없다.
내가 할 일을 누가 대신 해 주는 게 이상하고 불편하게
느껴진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도 가능해진 세상이니 삶을 굳이
혼자 살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도 따라왔다.
나는 남과 함께 하는 삶을 위해
모든 일을 꾸준히 하려고,
낯선 일도 겁 없이 해 보려고 한다.
내가 늘 해 왔던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생각이 바뀌면 인생 자체가 달라진다.
방구석에서 나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다양하게 살고 있다.
잠깐 내가 정신줄을 놓을 만큼 매력적이었지만
즉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남에게 돈 갖다 주고 맡기는 건 아닌 것 같다.
전방위적으로 통제 가능한 파워를 갖게 되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게 됐을 때 한두 번
대행을 시켜 보아야겠다. ‘맡김’이 아니라 ‘시킴‘이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거나 여전한 매력을 느끼더라도
결국 ‘지금‘ 선택하고 ’ 당장‘ 선언하여야 하는 국면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선
한 번쯤은 너끈히 ‘선언’할 수 있는 확신의 순간이 온다.
“작은 걸음으로 겸손하게”(위 책, 321쪽) 간다면?
몇 번을 잃었다가 찾았었는데
이번에는 새로 구입해야겠다.
그 친구(안경)와 함께 한 날들의 사진 말이다.
그러니까 충분하다. 오래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