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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Jul 14. 2024

58. 재발- 그 무서움

- 강해지자는 말만으로는 낫지도, 강해지지도 않아요.


누군가 “‘아카징키’ 바르고“라는 말을 썼다.

어디서 들어 본 말인데 싶어서 검색어를 누르고

관련 글을 읽었다.


https://m.blog.naver.com/yngkim1/223466617393


소독약의 역사 안에 잠들어 있는 ‘아카징키’가 나왔다. 나도 어렸을 때 누군가들의 무릎팍에 남은 붉은 약 기운을 본 적 있었을까.

최근에는 무릎이 까지는 일이 있어

‘뿌리는 살균약’을 사용했는데 편리했다.

아키징키처럼 색이 남을 일도 물론 없고 말이다.

그런데도 아카징키라는 이름은 역시

뭔가 추억이 돋는다. 왜일까?





무리를 짓는 일의 목적이란

안전 확보가 첫째.



동물도 인간도 혼자 놓아 두면 힘이 빠져 버린다.

비근한 예로 ‘성대리’가 있었다.


단 한 명의 사내 구성원이라도

공식적으로, 대내외적으로 지지해 주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생사의 기로에는 서지 않았을 것이다.

따돌려지고 엄청 외로웠는데

그 때 ‘단체’ 결성과 가입이 그 밖의 사람에게 얼마나 무서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직접 겪었다.


먹지 못하고 하루하루 비참한 상태로 빠져 들었는데 하나 같이 외면을 했다. 뿐만 아니라,

돌아가면서 순번을 지정한 듯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성대리’를 향해 제 나름대로 ‘가공할’ 무기를 날린 각자의 사원들이 과장과 점점 밀착하고

과장의 무능함에 돌아서서 비아냥을 하던 이들이

태도를 바꾸었다.

과장이 한 번 울었더니 그렇게 됐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단체’로 ‘성대리’를 사회적 매장으로 끌고 갔다.


내가 많은 약을 먹어야 했던 배경은 이랬다.


그들이 대들고 자꾸만 싸우자고 덤비고,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 냉소적으로 나왔다.

싸악 눈치를 보면서 영리하게 거기 편승한 과장이

“내가 ‘성대리’를 그냥 둘 것 같아?!”라고 바퀴벌레가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은 비현실적 목소리로

내게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 특유의 패악질을 했다.


그 많은 증오의 손짓 발짓 주먹질이

마치 무슨 너울 같은 형상이 되어

잠자는 나를 깨워 댔기 때문이었다.


치료를 한 뒤에라도 병은 몸 속에 남는다.

그 일이 떠오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울렁거림,

속을 게우고 싶다고 충동하게 하는 구토감과 메스꺼림, 현장을 벗어나기 직전에 반드시 어질어질할 만큼

올리는 구역질이 증상이다.


제발, 재발하지 말아 줘. 나는 무섭단 말이야.


‘춘아재의 맛있는 일요일’을 쓰시는 ‘이춘노’작가님의 글에서 예전 따뜻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https://brunch.co.kr/@soujirou83/525


직장 생활 뭐 있나, ‘성대리’도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고

스며들 듯이 살 때가 있었다. 그 땐 ‘안전’했었지.





나도 그들을 거부했다.

나도 그들이 좋지가 않았다.



차 안에 앉자마자 토악질이 자동 발사됐다.

참았던 게 한꺼번에 터졌고 ‘재발’이란 글자가 머릿속에 타이핑되면서 바짝 식은땀이 났다.

이미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응급약을 꺼내 먹고선

살아 있다는 게 또 생경해서 눈물이 난 뒤였다.


무슨 일이었을까? 실은 그 날 순식간에 민원인에게 둘러 싸이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우선 그 중 하나가 업무 처리 중인 나를 ‘분노의 눈초리’로 계속 노려 보는 일이 있었고

마침 현장에는 다른 공무원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행사장에 다들 갔나 보다 한 순간

밀려 드는 민원에 숨이 가빴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하나둘 복귀하고 사람들이 흩어졌지만 문제는 내가 울렁거림을 사후로 느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 두 번 바뀐다. 감정과 기분이 저 위에서 마음을 지배하고 마음이 ‘쫄리는’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몸은 염증 반응으로 결과값을 준다.


나도 그들이 싫었지만 그들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설령 뭐라 해도 이미 ‘단체’가 된 사람들은 책임을 나눠 진다는 생각도 없이, 특별히 연대의 서약도 없이도

똘똘 뭉쳐서 ‘힘’의 축구를 선보인다.

‘반드시 너를 골대에 밀어 넣어 주겠어!’라는 투지를

불태우면, 사람 하나가 축구공이 되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다.

그럴수록 그들의 드리블이 싫었고

‘하나 만들어 보자!’라는 식의 축구가 싫었다.

축구공이 나인데 뭐가 좋았을까.

그러나 그들이 ‘축구공’의 마음 따위 알 리 없었다.





나의 정체성은 나만의 아카징키에서.



다음날 집에 돌아와서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몸 상태는 역시 너울대고 일렁거리고 울려 댔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찌 보면 피해 갈 수 있었을 일을 피하지 않고

온 몸이 아프도록 다 맞은 것이다.

하지만 소나기인 줄 알면서도 사람의 마음이란, ‘가다 보면 그치겠지’ 쪽에 잘 기울어서 그렇게 된다.


보나쓰’ 작가님도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참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을

브런치 통해 알게 된 기쁨이 크다.


https://brunch.co.kr/@bona2s/213


‘나의 사랑스러운 자전거’를 보니까 마음이 ‘기뻐 놀’았다. 근래 새롭게 시작한 분야에 좀 빠져 있느라 자전거는 좀 오래 쉬고 있었다. 자전거한테 미안할 정도로.


무덥고 습한 장마 소강일이었다. 땀은 말할 수 없이 흘렀다. ‘자전거와 친하게 지낼 걸.’ 하는 후회가 밀려 왔다. 매일처럼 타고 나갈 때보다 천천히 밟을 수 밖에 없다. 힘이 떨어진 것이다.


나는 원래 자전거를 못 탔다.

어렸을 때 못 배운 자전거 타기는 성인 이후엔 버킷 리스트에 있었지만 엄두를 낼 일이 아닌 것이 살짝, 아니 많이 무서웠다. 두 개의 바퀴에 내 몸을 실어 앞으로 달린다는 것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자전거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영낙 없이 무서웠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고 자전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게 사람을 없애시고 ‘자전거’를 벗으로 세워 주셨다.


병이 재발하면 이번에는 힘들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순간 나는 나만의 빨간 아카징키, 그러니까 자전거를 탔다. 아니, 발랐다. 내 맘에도 붉은 자전거의 색깔이 남았다.


(여담 하나: ’립스틱 짙게 바르고‘란 나의 브런치 필명은 ‘사람이 스스로 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서 붙인 것이었다.

내 안의 공포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과

많은 관련이 있었고 

그것을 알아차린 다음에 심각한 따돌림을 당했다.

다시 살아야 했을 때는 정말 많은, 내 인생 합친 것보다 많은 립스틱을 발라야 했다.

평소 말을 하지 않고 꾹 참는 버릇부터 고쳐야 해서

‘말하기’보다는 해 본 적이라도 많았던- 그래 봐야 도낀개낀이지만 - ‘글쓰기’에 도전했다.


립스틱으로는 부끄러움을 살짝!

아끼징끼로는 공포를 샤사샥!!

비껴 갈 수 있으니

두 가지 다 계속 꾸준히 사용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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