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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Sep 18. 2024

77.  ‘단념은 집착을 만들고.’

- ‘사랑의 시’(엠씨더맥스/채정은 작사)


명절이 끝나가는 날

단톡방에 ‘속보’가 떴습니다.

“내일 출근합니다.“라고요. 후훗.


다들 괜찮으시죠? 그렇든 아니든 저는 어제부턴가

한 곡의 가요로 온통 귀가 덮여서요.

바로 엠씨 더 맥스(Mc the max)의 ‘사랑의 시’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pQPo3TDHHY

‘윤도현의 러브레터’(2004년 방송분)




2003년이나 2004년의 나는 ?

뭘 하고 있었나, 뭘 생각했나 상상이 안 된다.

따라서 그때 나는 이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아 그런데

“저 같은 사랑 또 시작한 사람 있다면은

도망치“라고 한다?(얼마나 힘들면은!)


첨엔 “단념은 더욱 집착을 만들고”라는 가사가 안 들어와서

그런데 또 자꾸 귓가에는 남아서

결국 ‘한곡듣기’로 반복 돌린 담에,

아차 했다.


이 작사자(가)는 너무 외롭네!


저 같으면 이럴 거에요. 그렇다고 조언하면 안 돼요!

그런 사람이 제게 있는데

그는 저처럼 ‘온순’ ‘공무원‘ 타입이죠.

그는 ‘L'인 거에요.


https://brunch.co.kr/@dff3dd9acfae4f7/72


‘L'은 무엇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주위에 물어본다.

주위에서는

‘L'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L'을 말린다.

늘 그렇게 역사는 흘러왔다.


채널을 갖지 못하면

이제 남의 채널에 종속되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사회에선 인맥만 추구한 사람들이 여전히 승자다.


박진영 같은 사람은 가만히 자기 할 일만 해도 알아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우리들과는 ‘레벨’이 다르다는 대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생각했냐 ? 하면

‘(원치않는) 단념은 집착으로’ 남는다고

나는 ‘L'에게 직접 말은 못 했어도

어쩌면 그래서 엠씨더맥스의 저 노래가 더욱 꽂힐 수 밖에.


저 노래를 들으면서

만 사람이 만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마지막 말이나 마지막 행위를

하지 못하면 사건은 결코 안 끝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지 않던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내가 그것을 함으로써 무엇을 잃게 될 것안가

를 먼저 생각한디.


그리고 급기야 그 행동을 하게 된다면은

‘내가 잃어버릴 게 없다.’라는 것을 알았을 때일 경우일 때가 많다.


하지 않으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없는 행위가 더러 있다. 모든 것은

“피할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까.

(가사 일부)


2003년을 떠올리면 생각하게 된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 말이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 ‘마크’는

크리스마스에  그 유명한 ‘스케치북 고백’을 한다.


출처: https://m.blog.naver.com/pinksky-73/223323501434


우리는 아무도 저 장면을 보며

‘불륜의 굴레’를 떠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크’는 ‘세상 (이 볼때의) 미친 장난‘을 끝낼 용기를 냈고

아마도 영화가 끝났을 때 ‘마크’의 ‘인정할 사람 없’는 사랑이 막을 내렸을 것이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어떤 불행도

‘자기가 끝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나는 브런치 글을 참 또닥또닥(도닥도닥) 쓰고 있다.

조회 수도, 통계도 글쓰기 초심자인 나에게 안성맞춤인 숫자를 보여 준다.

매번 맘 속 정한 글을 정한 시간대에 올리는 나는

참 내가 대견하기만 한 비기너 그 자체!


공무원이 정년이 길고 보장된다는 게 어찌

시민의 호감을 바랄쏘냐고,


평상시 나는 또한


‘열정과 창의를 죽인 그저그런 집단’에 단 한번 매력을 느낀 적이 없기에

나 자신

남(다른 직업군)의 애호를 받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일과 사랑’은 닮은 데가 있다.

일도 빠지고 사랑도 빠지기 쉽다.

그러나 실망하기 또한 쉽다.

일도 사랑도 직진했다면

직진이 끝났음을,

그런데 그것이 내 손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는 걸

‘발표’함으로써

내가 내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다 할 수가 있다.


세상 아무도 나를 위해 싸워 줄 이가 없다고 탄식하길

그만 두고

내가 나를 위해

마지막 스케치북을 쓰고 넘기자.

‘러브 액츄얼리의 마크’는 쉬운 결정을 한 게 아니다.


그래도, 그런 후에라도

내게 그녀가 또는 사회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라면

홀가분하게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면서 축배를 들자.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어마무시한 용기를 냈다.

그게 왜 잘못인가.

오히려 대단한 일을 했다.


여기서 마지못하고 ‘단념’해 버린다면

나는 내 인생이 그 (왕따) 사건의 전개와 결말에

계속 끌려 가는 일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다.


왜냐 하면 ‘단념’은 집착을 더욱 크게 할 것이고 ‘내 인생의 젤 힘든 날’이 계속 되게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참아 온’ 용기를 낼 시간이 되었다.”

라고 ‘L'의 또다른 자아에게 조언한다,

비록 꿈 속에서라도.


그와 내가 함께 할 날을 위해 커피잔을 부딪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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