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갈라서자 할 때의 심정을 부인하지 말아요
과장이 한참 괴롭히기 시작했을 때였다.
보아하니 그의 행동이 모두 나를 똑 떼어내기 위한 것이었고
나는 짜드락거리는* 그런 일들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를 혼자서 점쳐야만 했다.
어차피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 짜드락거리다: 자꾸 성가시게 하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야.'라는 생각을 매일 했다.
자신의 생명줄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고,
자기 자신 하나 밖에는 둘도 셋도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던져서라도 여기서 살아 나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을 때
그 때 홀딱 알밤이 벗겨져 나오듯
나는 몸 하나만 지닌 채 튕겨 나왔다.
그 몸이 아픈 몸이었다는 것은 그 땐 생각의 중심부에 떠오르질 않았다.
기억의 되감기에 의해 자꾸 쇠잔해지는 정신상태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다음에
'아차, 내 몸이 정상 상태가 아니구나.‘ 한 것이지,
'저 사람들이 어쩜 나한테 왜 말을 안 걸지?' 했을 때는
고립감과 무력감이 너무 커서 자리를 지키기가
힘들었을 뿐이었다.
병이 나리라는 생각을 않고 일에 몰두한 결과는
참담한 사회적 관계의 '쇄약 패턴'에 들어가 버린 상태로 돌아왔다.
내가 그렇게 대인관계에서 능력도 매력도 없어져 버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카르텔'('담합을 통한 이윤 극대화'라는 정의로 말해 보자.)이라는 게
사실 그들끼리의 연합이
만약 변하지 않는 끈끈한 성질을 지녔고,
개개인의 독립적 판단과 그 실현이 가능하다는
여건에서 뭉쳐서 움직였다라면
나도 카르텔에 한 표를 주었을 수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카르텔을 만드는 목적 자체가
자유로운 경쟁에 반대하고 새로운 도전을 거부하려는 의도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그 앞에서 전반전도 못 해 보고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카르텔 조직원인 그들 중 누군가가
나를 '보증'해 주어야만 진입할 수 있는 조합이라는
것이다.
내가 까딱 실수하면 그가 나 대신
내 과오로 발생한 ‘빚’(책임)을 갚아야(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연대 보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금융계의 연대 보증은 '돈'이 되고 안 되고만
따지면 되는 데 비해
'주연'은 여기서 '같이 술 마셔 본 인연'을 뜻한다.
그리고 그런 결합이 얽히고 설켜야만
이너가 허용되는 것은
숫적 팽창을 제한하려는 생각이 작동해서
그렇게들 한다.
이것을 거스를 수도 없지만
여기에 올라 타고 갈 수도 없다.
모든 'O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본인이 선택적으로 진입할 수 없는
출생시 정해지고 노력으로 극복 안 되는 배경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때
나는 그 시절 바깥에 서 있었고,
닫힌 상자 안의 그들이 나와 주길 기다리는 사람이었다가
나중에는 누가 나올까봐 무서워지곤 했었다.
옳고 그름을 나누어서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고 하는 사고가
유연하지 않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승패를 가를 때는 약한 사람과 강한 자가 있을 뿐이고
과장이 그랬던 것처럼 본인의 옳음을 증명할
어떤 근거를 들어서
멤버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들였지만 불안정한 탑을
잠시 동안 무너지지 않게 하고자 나를 끌어내린 일,
그것을 잘 지켜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끌어내려질 때 만신창이였던 나에게 무관심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한 쪽 눈을 질끈 감으면서 '따돌림'을 완성했다.
나는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그들이 바빴던 것이 아니라,
그저 귀찮고
자신의 약함을 그 앞에서 무너져 보고 마침내 깨닫는 경험을 다들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현재 근무지에서는 내가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의 피해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누군들 나를 보는 것만으로는
그 짐작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소문'을 내고 '소문'을 따르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을 수 있다.
쉽게 말할 수 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라는 뜻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손뼉도 마주쳐야'라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은 은근히 양비론에 견주곤 한다.
나는 "내 책임이 아니야."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장의 선동과 모든 직원들의 담합으로
이루어진 따돌림 사건을 들어서
'네 탓도 있었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면
그 날들의 기억과 그 기억에 가담한,
내겐 동료였고 팀이었던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뾰족했던 언어와
나에게만 차갑게 식었던 태도가 모두
타임라인처럼 눈 앞에 그려지는데
“이런 나한테 뭐라고요?” 라고 반문하게 될 것 같다.
나는 그 날들을 보내는 동안,
‘what focus(무엇에 집중해야 돼)?)를 찾아
정신을 가다듬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그 때의 내가 내린 결론은,
시간이 흘러서 그 날들의 사건들로
나의 정체성이 봄눈처럼 녹아 버린 후
지금 하는 일이 예전에 하던 일과 달라서
지금 나의 위치가 예전에 있던 위치와는
비할 수 없어서
방황을 많이 했다.
'그 때 그러지 말았더라면, ...', '그 때 과장에게 무릎 꿇었더라면,...'
정당하지 않아도 편히 생활할 수 있는 길을
나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정당, 부정당을 따지기도 전에
스스로 짐을 챙겨 나오게끔 전개되었고
나는 너무 아팠다.
어떤 선택, 어떤 결정을 했을 때,
한 때는 좋았던 사람들과 반목하게 되고
대립하게 되어 맘이 괴로웠을 때,
도저히 같이 갈 수 없어서
내 쪽에서 손을 들고 나왔을 때
가는 길이 홀로 많이 외롭더라도
차라리 갈라서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진 말자.
그건 그 사람이 전체를 감당하고 있는 일이고
잘했든 못했든
차라리 갈라서기로 한 결정은
성급하게 저지른 불 장난이 아니라,
칭찬을 들을 일도 아니지만
비난을 살 일도 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런 따돌림을 겪는다면
거기에서 파괴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코어를 건져
내려고 할 것이다.
불길에서 타고 있는 자신의 옷가지들을 버리더라도.
옷가지들은 바꿀 수 있지만
내가 과장의 필살기였던 '오만한 증오'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살아 주기엔
내게 주어진 인생의 모든 시간이 짧았다.
그 전까지 일이 즐거웠던, 일하는 내가 좋았던 나였다.
나는 과장의 '증오', '오만'과는 차마 공존할 수 없었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 하는 일은 고역이다.
자신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은 곧 좋은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쓰는 나의 '쓰기'가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