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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Nov 30. 2024

94. 두려움을 팬다.

- 언젠가 세상을 등져야 한다면


“그러니까 첫 단추를 잘 꿰었어야지.”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지라도

지금 ‘실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ㅡ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의 가슴팍엔

지진 크랙이 발생한다.


뭉클하는가 하면 순간에

 ‘빠지직‘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에게만 들린다.


방법은 그런 말을 듣지 않는 것인데

그러려면 혹여나 가슴 아픈 말을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리스트를 뽑아서 만남을 ‘절제‘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것이 또 어렵다.

살면서 ‘믿는 도끼가 발등을’ 꼭 찍질 않나,

나를 가장 잘 이해할 거라 여겼던 사람이 한마디 말로

비수를 날리니까

누가 누군지 애매해지기 마련이다.


우리 어머니는 그래서

우리 가족의 그 어떤 ‘안 좋은 일‘

그 연세가 되도록 단한번이라도

대소가*에 실토하지 않고 사셨다.

그러면서도 만남은, 소식은, 끊지 않으셨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늘 힘주어 말씀하셨다.

“왜 말하니? 우리 집안의 얘기인 걸.“


사실은 자식 얘기였다. 내 얘기도 그 하나다.


* 대소가: 어려서부터 ‘대소가’가 아는 일은 모두 제법 큰일이라는 것 말고는, 어디까지가 큰집이고 어디서부터 작은집인지 그저 부모님의 양측 가족이라고만 생각하고 그러려니 한 부분이다. ’친척‘ 개념이랄까.



좋은 생각은 좋은 일을 불러오고



한 번 잘못된 인연을 만나면 계속 그럴 가능성이 짙은 것일까?

나 자신만 봐도 한 번의 실수가 부족했던지

자꾸 반복하곤 했던 점 있다.


그래서 사람은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나 보다.

아뿔싸. 또 첫 단추가 나와 버렸네.


그래. 만약 잘못된 단추를 맞추었다면

그리고 뒤늦게 그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을 애써 뒤집어 보려고 잠을 뒤척여 보았다.

내가 처음 만난 사람이 A급이었다면

두번째 만난 사람은 그 아래인 B급일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어 본다.


그럼 A급을 만난 사람이 다음에는 특A급을 만날 수 있고 처음엔 B급지에 있던 사람이 다음엔 A급지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단, 자신이 그것을 믿고 가능성에 열리면서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스스로 바뀌어 준비

되어야 한다.


좋은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자신의 모든 컨디션을 돌려 놓고

언젠가 오게 될 ‘좋은 일‘을 부른다.


어느 날 내부 갈등으로 트러블이 커지면서

서로가 꼼짝 않게 되었다고 치자.

이 때 좋지 않은 일들만 연속해서 일어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서로를 공격하느라 시간을 써 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전화위복‘도 알고

사람들이 굉장히 다양한 사고를 할 수밖에 없으므로 시갼을 가져 보기로 한 경우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오히려 자신이 미스한 점을

발견할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업그레이드시킨 후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진지해질 수 있다.

그 다음에 올 일들은 ‘전화위복‘의 일반 프로세스이다.


어떤가. 생각에 따라 좋고 나쁜 일이 확연히 달라지지 않는가.



대개의 사람들이 ‘쉽지 않은‘ 일을

잘 해 내는 이유



‘저 힘든 걸 어떻게 저렇게 잘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해 내는 사람들이

이 세계의 ‘프로‘다.

그렇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뭘까.


못 해 낸 걸 ‘실패’라고 생각하면

다시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와 대인관계에서의 실망, 배신, 그런 부정적 경험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면

사람을 만나는 데 제한이 걸려 버린다.

모종의 생각이 낳는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멀리 떨어져 혼자 있는 데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에게 잊혀지곤 한다. 점점 폭이 좁아진다.


다 두려움을 ‘갖고-덜 갖고‘의 차이 같은데

‘또 그렇게 될 거야.‘하는 생각 때문에

어떤 샷(시도)도 날리지 않으면

공은 누워 있고 내 마음도 바닥에 붙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날 경험해 봤다.


때려야 한다, 공을.

어떤 시도를 자꾸 해 본 사람이 성공적인 일을 더 많이 하게 될 가능성에 가까워진다.


패야 한다, 두려움을.

두려움이란 어떤 ‘안정‘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감히 그것을 팬다는 생각을 못 하게 된다.


‘이쯤만 하지 뭐.’, ‘여기까지 온 게 어디야.’,

‘나는 직장이 있으니까 괜찮아.’,

‘괜히 바쁘게 쫓아다녀 봐야 태생을 바꿀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어.’,

‘나이 들어 건강 해치는 일은 금물이고 말고.‘

와 같은 내적 소리들이

자신이 기존에 가진 ’제 몫’만큼을

굉장히 소중해 보이게 만들고

그것을 잃어 버릴까 봐 두려움에 떨게 한다.


사실 두려움을 패고 나면

기존의 내 자산을 잃지 않으면서도 증식도 할 수 있는

도전의 길이 보이는데

굳이 아마추어는 두려움에 양보하고

아마’계의 서열에나 신경 쓰는 존재로 살아간다.


두려움이 많았던 2024년이

한 달을 남기고 있다.

진짜가 아니라면 보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이 새롭지 않아서 손을 들고 물러섰고

사람들의 마음도 경계해서 그들 시선이 머무는 곳을 피해 살았다.

지난 경험이 현재의 적응을 압도했고

나는 ‘순‘ 적응만 했지

‘역‘ 발상엔 예전과 달리 소극적으로 되어 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서울에 내린 폭설을 겪고

자꾸 지연되는 지하철 안 출근길에서

다시한번 나를 돌아봤다.

나는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한정된 시간의 존재’일 뿐이었다.

지금 당장 세상을 등져야 한다면

지금 하지 않고 있던 일들이 말할 것이다.

”빨리 해 내라.“고.


죽음이 다가와서 바빠지기 전에, 그 때 허둥대지 말고

미리 조금씩 능숙해지고

철 든 삶을 살아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도 좋은 모습으로, 늘 꾸준히 하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어느날 이 삶이 끝났을 때

기억되기 좋은 나의 ‘스타일’로 남을 일이다.


언제까지나 그 사람들, 나를 애 먹인 사람들,

유난히 무책임했던, 그다지도 무능력하면서 뻔뻔했던

왕따 책임자들에게서 완전히 그림자조차 벗어나려면


‘아프지만 않으면 다행이야.‘ 하는 병도

고쳐야 하고

‘왕따 피해자’란 게 알려진다는 게 두려워서

접촉도 피했던 움츠림을

타.다.닥. 털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다시 반복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흠씬 두들겨 패 놓고

손바닥을 맞부딪혀 털면서

패션 모델처럼 다리를 붙이고 지면을 차듯이

걸어가야 한다.

‘이 걸음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워킹이야!‘

하면서.


실패를, 그것도 여러 번,

딛고 일어난 사람들- 그들이 ‘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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