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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테이프 May 22. 2024

꾸준함의 비밀 2_집안일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효과를 꿈꾼다


가정주부로서의 자존감이 높았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꽤나 집안 살림을 잘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면서 환기를 시키고, 아이들이 등교를 하면 인사를 하고 들어와 소매부터 걷어붙이고는 웅장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입장했다. 하지만 웅장했던 첫 마음과는 달리 청소, 빨래, 설거지, 그 외 잡다한 일들은 물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끝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집안일은 끝이라는 게 없는 건지 원망스러웠다. 정말 가정주부에겐 퇴근도 없고, 휴가도 없다는 게 너무 공감되어서 마음 한편이 찌리릿하고 저렸다. 팥쥐 없는 콩쥐가 된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집안일을 붙들고 있다고 해서 살림을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내 에너지는 계속 고갈되는데, 계속 쌓이는 집안일에 진절머리가 날 때쯤이었다. 미니멀라이프가 한창 유행이기도 했고, 둘째가 커가면서 덩치가 큰 육아용품을 치울 날만 기다렸다.






청소는 10분 만에, 빨래는 몰아서


집안일에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들이고, 효과를 보려면 평소에 잔잔바리로 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잔잔바리로 관리가 쉬우려면 짐이 일단 없어야 하고, 물건을 쓰면 바로바로 정리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

그때부터 짐을 줄이거나, 늘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청소는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바로 청소기를 돌리면서 지난밤에 미처 치우지 못한 물건들을 정리한다. 모델하우스 같은 집의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책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소파 위에는 미처 제자리에 넣지 않은 빨래 개어놓은 옷들도 있다. 

다만 식탁과 바닥에는 물건들이 없도록 유지한다. 무선청소기를 주로 사용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유선청소기를 굳이 사용한다. 강력한 흡입력 때문에 무선으로 돌릴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개운함을 맛보기 때문이다. 유선을 돌리는 날은 침대 매트리스, 가구 위의 먼지나 지우개 가루, 소파까지 다 돌린다. 이런 날은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빨래는 모아지면 상황에 맞춰 돌린다. 어떤 날은 하루에 세 번씩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세탁기를 돌리지 않기도 한다. 세탁실과 화장실은 건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방 화장실과 세탁실은 청소기를 돌릴 때 같이 돌린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집안일에 소비하는 총량을 비슷하게 맞추려고 한다. 나의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으므로.

이 정도만 해도 집안의 상태는 양호하게 유지되는 것 같다. 이 정도만 유지돼도 식구들에게 잔소리를 안 하게 된다. 나 혼자 감당 가능하므로.


대청소는 잘하지 않는 편이고, 가끔 에너지가 충만하거나, 필이 꽂히는 날이면 매직블록을 갖고 여기저기를 닦는다거나, 유리를 닦는다거나, 창틀을 청소하는 정도다. 화장실은 남편이 알아서 관리하는 중.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지만, 옷은 미니멀할 수 없어!


다양한 옷을 사고 입어보고, 심지어 꾸미고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직업이 전업주부이다 보니 외출복으로 번듯한 것들이 필요가 없었다. 인터넷으로 옷 구경을 하면서 이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입을 일이 없어 구입해도 못 입을 게 뻔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시절에 오히려 아이들 데리고 외출을 자주 했다. 하지만 외출을 자주 한들, 옷을 아이와 활동하기에 가장 편한 옷차림만 입다 보니, 어느 날 내 사진을 보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쁜 옷을 입고 싶어도 입을 일이 없어 나는 쇼핑몰의 옷들을 캡처해서 사진첩을 뒤적이며 구경만 하고 대리만족을 느꼈다. 

지금은 필요한 만큼만 갖고 있으려고 노력 중이다. 가끔 보면 정말 입는 옷만 입는 것 같고, 생각보다 옷이 없네? 싶기도 하다. 


최근에는 여름맞이 옷을 좀 구입했다. 티셔츠와 맨투맨뿐인 옷장에서, 니트와 카라가 있는 옷들이 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동생에게서 쇼핑백 두 개만큼의 옷을 받아왔고, 티셔츠 대신 반팔 니트를 두세 벌 샀다. 줌으로 수업을 들어가니 상의 위주로 구입했다는 것이 좀 웃기지만. 


작년까지는 계절별로 옷을 수납박스에 넣어서 보관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박스를 꺼내고 넣으면서 옷장을 싹 갈아엎는 일을 반복했는데, 올해에는 유난히 귀찮고 힘들더라. 신랑이, 그러지 말고 이제 다 옷걸이에 걸어봐!라고 말하는 한마디에 옷걸이를 40개를 주문해서 걸었더니, 세상 편하다. 옷장이 조금 빡빡해 보이기는 하지만. 소장 중인 옷들이 한눈에 보이고, 옷을 반듯하게 갤 줄 모르는 신랑에게도 이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







나의 가장 미니멀한 공간은 주방


주방용품은 정말 내가 산 게 별로 없다. 결혼할 때 엄마가 사주신 그릇은 착착 겹쳐지지가 않아서 공간차지가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6인용으로 샀던 그릇들을 4인에 맞춰서 정리하고, 필요 없는 것들은 처분했다. 우리 집에 있는 주방 기기는 핸드블렌더, 커피머신, 정수기, 에어프라이어, 미니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전기주전자 정도인 듯? 예전에 주스 갈아 마시려고 샀던 닌자는 덩치도 너무 크고, 생각처럼 곱게 갈리지 않아서 인테리어 실장님께 입양 보냈다. 에어프라이어도 예전에 쓰던 바스켓형을 쓰다가 버리고 나서 3년 정도만에 새로 구입한 것 같다. 


내가 그릇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옷처럼 그릇에도 관심이 많았으면, 주방에서 정말 매일 우당탕탕거리며 수납장을 열고 닫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거다. 주방 카운터며 아일랜드 위에는 정말 필요한 것들만, 수납장에 들어가지 않거나 아이들 손에 잘 닿아야 하는 것들 위주로만 꺼내놓았다. 지금 카운터 위에 올라와 있는 것들은 정수기, 커피머신과 아이들 컵, 나무로 된 주방 도구들과 그래놀라, 단백질 파우더. 아일랜드에는 태블릿과 블루투스 스피커가 전부다. 

물건을 더 치워서 더 하얗고 깨끗하게 만들고도 싶지만, 모두 다 집어넣다 보면, 내가 주방으로 들락거리며 식구들의 요구에 따라 꺼내줘야 할 게 뻔해서, 이건 나의 편의를 위해 스스로 합의를 봤다. 주방 싱크대 상판을 아이보리 계열로 바꾼 것이 정말 속이 시원해서 볼 때마다 행복한 것도 한몫한다.





집안일에 나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 때로는 식구들을 위해 사랑을 베푸는 일이고, 내가 잘하는 일이라는 기분에 뿌듯하기도 하다. 내가 깨끗하게 만든 공간에서 식구들이 편안하게 휴식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내가 만든 음식으로 식구들이 한 끼의 식사를 즐겁게 하는 것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으면 그것이 나에게 억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왜 나만 치워야 하는가, 왜 나만 밤늦게까지 이렇게 아등바등 대는가, 나는 도대체 저녁만 왜 두세 번을 차려야 하는가, 왜 쓰고 난 물건을 아무도 치우지 않는가.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내 기분만 나빠지고, 식구들은 내가 짜증을 낸다고만 생각하지 정작 개선이 크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본인의 역할을 주고 그 안에서 각자 자기의 몫을 하도록 나의 짐을 덜어내고, 나는 내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기 위해 계속 잔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이것이 저녁의 평화를 위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집안에 물건이 많아지는 것은 한순간이고, 다시 비우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역시 소모된다. 당근에 팔아야 하고, 가격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고 올리고 거래를 성사시키고, 처분이 되지 않는 물건들은 버리기에는 또 아까워서 버리지도 팔지도 못하고 몇 년째 집안 한구석 박스 안에 방치 중이기도 하다. 오늘은 방치 중인 그 물건들을 어떻게 좀 처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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