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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테이프 May 07. 2024

05_희생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시간

언급하자면, 결국 나는 아이가 7살이 된 해 가을, 잠수네 사이트에 가입해서 엄마표 영어의 여정을 시작했다.


잠수네에서 얻은 정보들로 책을 빌려와 매일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집중 듣기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음원을 찾기 전에 내가 읽어주고, 아이가 손가락으로 엄마의 읽는 속도에 맞추어 따라가는 방식으로 했다. 음원 노출은 아이가 워낙 영상 보는 것을 좋아해서 수월했다. 처음에는 페파피그, 까이유, 도라로 시작했다. 물론, 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오는 교재를 200% 활용했다. 이러한 과정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잠수네 사이트에서 재미있을 책들을 계속 찾고, 저장하고, 도서관 위시리스트에 저장했다. 그리고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원서를 구입했다. 세상에, 아이들 그림책이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있다는 걸 나이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우리말 책도 좋지만, 유명한 아이들 책에는 번역본이 국내작가들의 책에 비할 바가 아닐 만큼 그 수가 어마어마한데, 번역본을 원서로 보는 감동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원서로 볼 때에는 그림과 어울리는 폰트 디자인, 원어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나 라이밍 은율이 느껴져서 그것 또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번역본이 있는 경우에는 원서 위주로 책을 보고, 국내작가들의 어린이 책은 한글로 온전히 느끼면서 한글책을 읽었다.


아이가 원할 때마다 내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책을 읽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차에서도 음원을 들려주고 싶어서 방법을 찾아보니, 유튜브에는 아이들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영상들이 많이 있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 동안에는 책 한 권을 검색해서 유튜브에서 영상을 여러 개를 들어보고, 아이의 취향에 맞을 만한 영상을 음원파일로 만들어서 들려주었다. 그중에 자장가처럼 들려주기 좋은 음원들은 따로 저장해 놓았다가, 아이가 잠자러 누우면 들려주곤 했다. 이십 대, 소리바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내 컴퓨터에 음악파일은 40기가가 넘을 정도였다. 그만큼의 노래를 모두 다 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앨범이 생기면, 거기에서 연관된 아티스트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앨범을 모두 다운로드하여 듣는 것이 그 시절 나의 행복 모먼트였다. 아이의 음원파일을 정리하면서 그때가 떠올라서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첫째의 엄마표 영어를 4-5년 정도 한 것 같다.


나에게 뭔가 바쁜 명분이 생긴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고, 영어를 워낙에 좋아했으니까, 이렇게 영어에 있어서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고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설레고 기쁘고 뿌듯한 시간들이었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 내가 직접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해서 수작업으로 음원 스티커를 붙이고, 음원 파일을 따로 모아 저장해 두고, 책도 레벨별로 분류하여 스티커로 표시를 해놓았다. 집에 아이들 영어책이 1000권이 넘게 쌓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영어유치원 대신, 영어 학원 대신 책을 구입하고 아이와 재미있게 영어를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책값이 동네 영어 학원 한 달 교육비보다 많이 들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고백하자면,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일들이어서 그런지 그러한 시간들이 나를 희생시키면서 고생한 과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간들 덕분에 나 역시 함께 성장했다. 아이들 영어 그림책이나 영어를 집에서 익히는 과정에 대해서도 나는 점점 정보가 많아졌고, 나만의 기준이나 철학 비슷한 것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엄마표 영어가 쉽지도 않지만, 나에게는 학원을 보내고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 같았다. 그 당시에는 말이다. 내가 아이의 모든 학습이나 학원에서의 상황에 대한 것들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ORT 시리즈. 둘째까지 잘 보았다. 이제 다시 당근에 팔아야 하는데, 아이들보다 내가 더 아쉬운 건 왜일까. 아직도 본전을 못 찾았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빨간색 스티커는 가장 쉬운 1단계, 노란색은 2단계, 초록색은 3단계, 파란색은 4단계




그림책을 많이 읽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도 생기고, 좋아하는 시리즈도 생겼다. 그리고 시리즈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추가로 구입하면서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느꼈다. 사실은 내가 영어로 말하는 (읽는) 시간이 그냥 너무 좋아서 읽고 싶었던 것도 있다. 나는 영어를 말할 수 있어서 즐겁고, 아이들은 엄마가 책을 읽어주니 엄마랑 함께하는 그 시간이 그냥 즐거웠을 것이다.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이 옵션으로 있으면 저렴한 페이퍼백을 구입했다. 부피도 적게 차지하고, 사야 할 책이 많았기 때문.



아이들이 더 이상 그림책을 읽지 않을 나이가 되면, 나는 그때 저 책들을 다 처분할 수 있을까? 나의 재산처럼 여겨지는, 나의 성장의 밑거름을 만들어준 그림책들이라, 저 아이들은 도저히 처분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챕터북이나 리더스북은 처분할 마음이 잘도 생기는데, 그림책은 계속 갖고 있고 싶을 정도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첫째가 재미있게 읽고, 지극히 여자아이들의 취향인 챕터북이나 시리즈는 당근으로 전부 판매했다. 책을 쌓아둘 공간이 부족했고, 그 책을 팔아야 또 다른 책을 살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하다 보니 영어 책이 3000권 가까이 쌓이기도 했었다. 영어책들을 보면 부자가 된 것 같고, 내가 마치 저 책들을 다 공부한 것처럼 뿌듯한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점차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이들 책을 빌려오거나 사면, 나는 내가 먼저 다 읽어보았다. 챕터북도 최소한 시리즈의 한 권은 읽어보았다. 정 시간이 안되거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인터넷에 검색해서 줄거리를 미리 알아보기라도 했다. 아이에게 흥미를 자극시키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엄마표 영어를 한다고 하면, 본인은 그렇게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DVD영상 보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안될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이 취향에 맞는 영상 하나만, 대박 나는 영상 하나만 만나면 그다음은 수월할 텐데, 라면서 속으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아이가 2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즐기면서 언어를 습득하면 충분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2학년 여름이 되면서부터 나에게도 불안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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