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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테이프 Mar 13. 2024

04_그렇게 책육아와 엄마표 영어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낼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유에 보낼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까지 읽었던 육아서에서는 영어유치원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영어유치원에 대한 갈망이 애초에 생기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동네 유치원에 보냈는데 다행히도 영어 수업시간이 하루에 30분이 들어있었다. 수업 커리큘럼은 잘 몰라도, 교재가 유명한 것이라고 해서 알아보니 이미 유명한 교재였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적 교재와 CD를 집에 가져오면 나는 아이가 놀 때마다 CD를 틀어주고, 하루에 40분 정도는 DVD를 틀어주었다. 처음부터 아이의 영어를 어떻게 가이드하겠다, 어떻게 공부를 시키겠다는 목표나 가치관이 있는 엄마는 아니었다.


아이가 들고 온 DVD를 틀어주니 아이는 영상에 맞춰서 율동을 따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정말 즐거워했다. 교재와 커리큘럼 자체가 영어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단어나 파닉스를 배우는 학습의 느낌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면서 익히는 습득의 커리큘럼이라는 느낌이 와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노래에서 "Stand up, turn around, sit down, look around, look down, look up, clap your hands"와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나오면 아이는 노래와 영상에 맞춰 율동을 한다. 율동은 노랫말 그대로 행동을 취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다 보니 영어 철자는 몰라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인지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것이었다. CD를 차에서도 틀어주고, 집에서도 틀어주었다. 반면에 하루종일 틀어주지는 않았다. 아이가 정말 자유롭게 놀고 있을 때 정말 그냥 흘러나오는 배경음악 같은 역할로 틀어두었다. 아이는 놀이에 집중하다가도 한두 번씩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이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여기에 영어가 더해지니 영어는 그냥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아이의 성격과 영어 수업의 성격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율동을 익히라고 한다면 그 아이에게는 영어 시간이 고역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5-6살 때까지만 해도 영어 교육에 관해서 내가 로드맵을 정하겠단 생각은 못했다. 7살이 되면서부터 곧 8살이 된다고 생각하니 영어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영어 교육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영유 반대, 엄마표 영어, 책육아는 내가 고른 책들의 공통 키워드였다. 그리고 저자들의 인스타그램이나 SNS계정을 들어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으려고 노력했다. 새벽달님을 팔로우하면서 그분이 추천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아이와 함께 리듬을 넣어 한 문장씩 읽기 시작했다. 기초리더스였다. 한 페이지에 한 문장이 있었고, 직관적인 그림을 보면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얇은 기초리더스로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가 따라 읽기에는 힘든 스토리책은 내가 밤마다 아이를 앉히고 읽어주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아이에게 읽어주니 아이가 정말 눈이 반짝이며 흥미로워했다. 게다가 동생을 재우고 밤에 엄마랑 거실에서 속삭이듯 책을 읽어주니 아이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마음이 짠해온다.


새벽달님 외에도 다수의 영어 선생님을 팔로 했다. 그분들은 모두 영어책 읽어주는 것에 있어서 진심인 분들이었고, 엄마표영어를 하고 싶은 엄마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열심이셨다. 니콜선생님이 오전마다 인스타 라방으로 그림책 읽어주는 시연을 해주셔서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 책을 그대로 구입해서 아이들에게 똑같이 열연을 펼쳐주었더니 아이들이 정말 밤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난리였다.


육아에 있어서 가장 성취감이 느껴지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밥을 정성껏 차려도 편식쟁이 아이에게는 팽 당하기 일쑤였는데,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정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읽어줄 수 있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내가 학창 시절 영어를 좋아하고 열심히 했던 것이 이렇게 육아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뿌듯하고 열정이 돋아났다.



그리고 이렇게 몇 달 동안 같은 그림책을 자장가처럼 읽어주니 어느 날 아이는 책을 보지도 않은 채로 말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새로운 책 보다 좋아하는 책을 무한반복하는 타입이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도움이 되었다. 천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신기해서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그림책의 음원을 찾아 음원 파일로 만드는 작업도 기꺼이 하게 되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림책을 유튜브에 검색해서 책 읽어주는 영상을 찾아 여러 가지 영상 중 가장 음원으로 듣기 좋은 것으로 골라 음원파일로 만들어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우리 집은 금세 영어 그림책과 한글 그림책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주는 일이 육아에서 가장 보람차고 쉬운 일처럼 여겨졌던 날들이었다.


30번은 읽었을 책. Mo Willems의 Pigeon 시리즈
읽을 때마다 울컥하는 감동적인 이야기. 자장가처럼 매일 밤 읽어주었더니 어느 날 아이가 외운 것처럼 읽었다.
Nick Sharratt 작가의 책은 그림이 귀엽고 음원도 듣기가 좋아서 아이가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부른 책들이다
Audrey Wood와 Don Wood 부부의 그림책 시리즈는 무엇보다 음원이 좋아서 아이가 반복해서 들으려고 책을 보았다.
이 책은 몇 달동안 30번도 넘게 봤을 것 같다. 이 책이 배송오자마자 한시간을 넘게 내리 읽어주면서 연기를 하느라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연기력이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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