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념테이프 Feb 15. 2024

03_육아의 피난처는 독서



학창 시절, 나는 책을 읽으며 자란 아이가 아니었다. 글보다는 그림이나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음악을 들으며 공상을 하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내가 책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부터였다. 막연하게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지라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읽을만한 책을 고르는 것이 어려웠다. 일단은 친한 친구들이 읽고 추천해 주는 책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의 독서 열정은 육아를 하면서 불타올랐다. 첫째 아이였고, 나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임신기간 동안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가치관을 세우지는 않았던 탓에, 우왕좌왕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에도 나의 고단함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예민한 아이인 건 알겠는데,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첫째 아이의 예민지수가 높아지지 않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내 삶은 조각난 유리컵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나는 설거지를 할 수 없었다. 자는 동안에도 엄마가 곁에 없으면, 물소리가 나면, 뭐라도 소리가 나면 아이는 20분 만에도, 한 시간 만에도 바로 일어나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 옆에서 같이 누워있는 쪽을 택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은 원초적인 본능을 제외하고는 완벽히 사라진 것만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아이는 24시간을 나와 붙어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이가 잠시 잠든 시간에는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아이를 밤에 재워놓고 거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현실에서 분리된 느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읽은 책들은 대부분 육아서적이었다. 예민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는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대부분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것에 급급했다. 자기 계발의 ㅈ 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보니 둘째는 식욕이 왕성하고, 활발하고, 알아서 잠드는 아이였다. 첫째는 여전히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한 시간씩 우는 바람에 신생아 동생이 울어도 안아줄 수 없는 상황이 많았다.


나는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우울감이 지속되던 날들이 있었다. 둘째가 조금씩 커가면서 나도 독서 편식을 조금씩 고쳐나갔다. 더 이상 육아서적은 보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또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서적에서 자녀교육에 관한 책으로 넘어갔다. 첫째가 7살이 되던 해에, 나는 책육아에 본격적으로 실천을 돌입했다.







아이와 내가 그나마 평화롭고 즐겁게 보내는 시간, 그리고 내 체력이 어느 정도 보존되는 시간은 책 읽어주는 시간이었다. 첫째는 일곱 살, 둘째는 네 살이 되니 이제 아이들을 옆에 끼우고 꽤 긴 시간 동안 책을 읽어줄 상황이 만들어졌다. 아이들 책과 교육에 관한 정보가 많다는 유료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했다. 포털사이트에 아이들 책에 대한 것들을 검색하면 온통 협찬이나 광고, 홍보하는 전집 시리즈들만 나와서 유료사이트에 가입했다. 그곳은 정말 또 다른 세상이었다. 아이들의 학년 별, 장르별, 수준별로 한글책과 영어책에 관한 리스트와 후기, 집에서 학습하는 엄마들의 게시글들이 넘쳐났다. 나는 밤마다 아이들을 재우고 사이트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먼저 가장 인기가 많다는 그림책 리스트를 뽑아 도서관에서 빌려오기 시작했다. 효과는 일주일 만에 바로 나타났다. 책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첫째가 매일 밤마다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다. 많이 읽은 책들은 제목만 말하면 책의 모서리를 보고도 골라오는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 깜짝 놀랐다. (이것은 아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모서리에 조그맣게 그려진 동물이나 심벌 같은 것을 보고 제목을 말하면 찾아오는 식이었다. 알고 나서 보아도 이건 정말 신기함 그 자체다.) 그렇게 낮이건 밤이건 아이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밥 하는 시간과 설거지하는 시간은 예외) 읽어주었다. 아이가 돌아다니지 않고 내 옆에 꼭 붙어서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힐링 그 자체였다. 어떤 날은 목이 아파서 이제 그만 읽자 소리도 했지만 나는 그런 시간으로 나 스스로에게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잘 재우는 기본적인 양육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한글책과 재미있는 영어 그림책을 빌려와서 읽어주었다. 낮에는 틈틈이 나를 위한 책을 읽었고, 저녁에는 아이 둘을 옆구리에 앉히고 아이들의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책의 아름다움과 유머, 창의력에 감탄했다. 그렇게 책을 읽는 것 자체에 내가 더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책 읽는 시간은 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2_육아가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