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글쓰기로 치유가 될까
치유적 글쓰기의 가능성
엄마의 글쓰기는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청력을 잃은 엄마가 세상과
더 이상 단절되지 않기 위해
글로라도 소통을 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다.
세상과 단절되며 치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엄마의 글쓰기가 계속되면서
처음 의도를 벗어나 엄마의
어린 시절 상처를 치유해 가기
시작했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심리치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어린 시절, 젊은 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치유적 글쓰기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고 읽었지만
정말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나날이 변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글로 치유받는 일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기대하게 된다.
시어머니는 성품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외며느리 노릇 하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렸고
10년 가까운 시간을 모셨다.
아프고 힘든 시간에 상처받고
나를 잃어갔다.
시어머니와 관계를 회복하기
원했지만 시어머니에게는
나는 끝내 아들을 빼앗아간
년이었다.
남편도 자기 엄마와 형제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나는 한번도
어머니의 아들을 뺏어본 적이 없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우선
집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취직한 요양원에서
일하며 어르신들께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그 어르신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내 상처가 치유된 줄 알았다.
말 그대로 이제는 괜찮은 줄
알았다.
시어머니를 모시며 부서진
몸이 요양원의 고된 일을
감당하지 못했고, 지금은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어르신을 매일 케어하며
요양원에서 일할 때 보다
지치고 힘이 들었다.
이유는 나의 트라우마였다.
시어머니에게 받았던 상처가
치유된 게 아니고 잠시 바닥에
가라앉은 것뿐이었다.
내 상처는 그대로 있는데
혼자 치유되었다고 착각했다.
나도 엄마처럼 짧게라도
아픔을 담담히 글로 쓰다
보면 내 상처를 치유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치유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엿본다.
하지만..
아직은 용기가 없다.
아마도 조금 더 멀리서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