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성범죄 재판에서 발견한 5가지 키워드
안녕하세요. 김주형 기자입니다.
저는 지난 한 달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 8건의 재판을 방청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채팅앱을 통한 성범죄가 5건, 주변 사람이 저지른 성범죄가 3건이었습니다.
각 사건의 재판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채팅앱
2. 영상과 사진
3. 공탁금
4. 피해자의 부재
5. 비공개
모든 피고인(죄를 지었다고 의심받아 기소된 사람)은 2~30대 남성이었습니다. 직업은 대학생, 물류센터 직원, 유치원 교사, 무직 등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범행을 인정했습니다. “반성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거나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게 돼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본의'는 무엇인지, 누구에게 죄송한 것인지, 어떤 점을 반성하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의 전자기기에는 영상, 사진, 채팅앱 접속 기록, 연락을 주고받은 통신 내역 등이 남아 있었습니다. '영상과 사진'은 공통적인 증거였습니다. 채팅앱 등을 통해 접근한 피고인이 아니어도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영상과 사진을 남겼습니다. 피해자를 협박하는 데 쓰거나 지인에게 전송하거나 온라인에 유포했습니다.
일부 피고인은 법원에 공탁금을 냈습니다. 200만원부터 6000만원까지 금액의 차이가 컸습니다. ‘형사 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보상 및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입니다.
공탁금은 피고인의 ‘반성’을 재판부에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어떤 피고인은 “공탁금을 마련하고 있다”며 선고를 늦춰 달라고 했습니다. 다만 공탁금이 항상 형량에 반영되는 건 아닙니다. 한 재판부는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고, 공탁금 수령도 원하지 않으므로 피고인이 낸 공탁금은 형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는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3명의 피해자는 사망했습니다. 피해자가 여러 명인 사건의 경우에도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신원이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수사 기간에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피해자의 변호인은 법정에 출석해 “피고인에게 엄벌을 내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사망한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출석한 증인은 재판부에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습니다. 증인은 '피고인과 연관된 사람이 증언을 듣고 보복할 것이 두려워서'라고 비공개 요청 이유를 밝혔습니다. 재판이 비공개로 전환되면 피고인은 대기실로 들어가고, 방청을 온 사람들은 법정 앞 복도에서 대기합니다. 이날 복도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폭력 사건, 그중에서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은 알려져야 하면서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특성을 갖습니다. 사적인 대화 내용, 자세한 범행 수법 등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도 존재합니다. 기사에서 재판을 그대로 중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이어오다가 오늘의 레터를 쓰게 됐습니다.
코트워치는 고민의 결과물을 담아 새로운 기사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