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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이영순 Dec 26. 2023

흔들리며 오는 길

오지랖도 이쯤 되면 병이다.


버스에는 그 여인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남게 되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어떤 날은 유난히 피로를 심하게 느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일터에서 집까지 오는 길은 두 갈래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코스는 전철과 버스를 세 번 환승해서 오는 길이다. 요금은 1650원으로 1시간 30여분의 시간이 소요되면서 서서 올 확률이 높은 갈래다. 


  반면 공항과 의정부를 오가는 리무진버스를 타면 갈아타는 번거로움 없이 집 가까운 정류장에 내릴 수 있을뿐더러 앉아서 올 확률도 높고 시간도 3-40분이나 단축된다. 3천 원이라는 요금이 좀 과하다 싶지만 각도조절이 되는 등받이 의자에 앉아 다리까지 편안하게 뻗을 수 있으니 그만한 가치는 있는 셈이다. 오늘처럼 피로가 심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잠시 멈추어 서서 어떤 갈래의 길을 이용할 것인가 망설이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한 시간여를 이용해 잠깐 눈이라도 붙여볼까 싶어 리무진버스를 타기로 맘을 정했다. 정류장에는 이미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일반버스 몇 대가 지나가도 탈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이들도 나처럼 리무진버스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전광판에 10분 후에 버스가 도착할 것이라는 신호가 뜬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간다. 빈자리가 있어야 될 텐데.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나보다 칠팔 세쯤 더 들어 보이는 여인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젊은이들이다. 여차했다간 서서 갈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스멀거린다. 선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스의 정차지점을 가늠하며 차가 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버스는 바로 내 앞에서 정차를 했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청년 두 명이 먼저 차에 오르고 내가 뒤이어 올랐다. 빈 좌석은 단 세 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맨 뒷자리 빈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정류장 간이의자에서 졸듯이 앉아있던 그 여인이 내 바로 앞 통로에 와 선다. 여인은 차가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의자 등받이를 움켜쥐듯 껴안는다. 빈자리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두리번거리기는 왜 또 그렇게 두리번거리는지. 이 불편한 마음은 뭐지? 왜 하필이면 내 바로 앞에 와 섰는지, 내 앉은자리가 점점 불편해진다.


  어머니도 이제는 자리를 양보받을 연세예요, 하던 아이들의 말도 떠오른다. 나는 한 시간여의 휴식을 양보할 것인가 눈을 감고 자는 척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의 토막잠은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 충분히 피곤한 상태이니 오늘만큼은 정말 편안하게 앉아서 가고 싶다. 까짓 거 모른 척해야지.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아, 그런데 평소엔 그렇게 무겁던 눈꺼풀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잔망을 떠는지 등받이를 껴안고 서 있는 여인을 자꾸 눈 속으로 불러들인다. 


  채 한 정류장을 지나지도 못하고 그 여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런데 전혀 열(悅) 하지가 않았다. 자리를 양보해 준 흐뭇함도 자족감도 없다. 그 여인은 내가 마땅히 양보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양은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내가 내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누굴 동정할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오지랖도 이쯤 되면 병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 조금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백기를 들어 진지(陣地)를 내주고 말았으니. 괜한 객기로 내 마음만 더 문(紊)하다. 그녀를 등지듯이 얼굴을 돌려 섰다. 통로를 가득 메우고 흔들리며 서 있는 사람들 속으로 나도 스며들었다. 어차피 자리에 앉아 있었어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갑자기 아이들 어릴 때가 떠올랐다. 연년생에 가까운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나는 택시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도 두 녀석을 무릎에 앉히고 다녔다. 어느 날 작은 녀석이 엄마의 무릎이 불편했던지 기어이 혼자 앉겠다고 떼를 썼다. 녀석은 혼자 앉는 편안함을 맛보았던지 그 뒤부터는 차문이 열리자마자 냉큼 새치기를 하여 버스에 타고는 두 팔과 다리를 있는 힘껏 벌려 영역표시를 하는 바람에 난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여가 지나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지자 차츰 빈자리도 늘어났다. 버스에는 그 여인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남게 되었다. 꼭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묵례로라도 덕분에 편하게 왔노라고 고마움을 표할 줄 알았는데 그 여인은 처음 태도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보다 한 정류장 먼저 내렸다. 


  먼저 탄 사람이 주인이지 왜 내가 먼저 차지한 자리를 양보해줘야 하냐고 항변하던 작은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순전히 내 의지에 의한 결정을 해놓고도 나는 자꾸 그 여인에게 내 선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내 마음이 어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그 여인도 몸은 편하게 오면서도 마음은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그 여인 또한 흔들리며 왔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흔들림 속에서 걷고 있는가. 어느 시인은 꽃도 흔들리며 핀다고 했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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